사건별조사보고서

반탁운동가들의 소련유형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31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해외동포사
첨부파일
반탁운동가들의 소련유형 사건.pdf [10846972 byte]
 

1. 신경득 외 4인은 1945년 12월, 철원에서 반탁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소련군의 다른 점령지역에서 연행된 반탁운동관련자 14명과 함께 평양 형무소에서 6개월 정도 복역하다가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구(舊)소련의 각기 다른 지역으로 배치되어 강제노역을 당했다고 하였다. 이들 반탁운동 관련자들은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 직후 복권되어 강제노역에서는 해방되었으나, 구(舊)소련의 서로 다른 지역으로 다시 격리되어 무국적자 등으로 어렵게 생활하였다고 하며, 이에 신청인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참여하여 구(舊)소련에서 유배생활을 한 신경득 외 18인의 명예회복을 요청하였다.

2. 반탁운동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여부에 대한 규명에 관해서는, 진실규명 신청의  대상인 다섯 지역(철원, 평강, 황주, 누천, 연평) 중 두 지역(평강, 황주)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반탁시위 또는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일부 확인되었으나, 나머지 세 지역(철원, 누천, 연평)에서는 반탁운동 사실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3. 진실규명신청의 직접적 관련자들 19명이 반탁운동에 참여했는가의 여부와 반탁운동이 소련유형의 직접적 이유가 되었는지의 사실 여부에 관하여는 진실규명 신청대상자들 19명 중 1명에 대해서만 반탁 운동과 관련된 1차 사료를 확보하였고, 6명에 대해서는 구(舊)소련정부가 발행한 공문서를 통해 유형생활을 한 사실은 확인되었으나, 그 공문서의 내용이 유형생활만을 증명할 뿐 유형의 근거가 되는 구체적 죄명이 적시되지 않아 본인의 주장 외에는 유형의 이유를 판단할 수가 없었고, 나머지 12명에 대해서는 함께 유형간 사람들의 구술 증언 이외에는 반탁 운동과 관련된 소련 유형사실을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없었다.

4. 해방 후 북한 지역에서 일정규모의 반탁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사실과 이와 관련하여 소련으로 유형 보내진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 할 수 있었으나, 현재 단계에서 더 이상의 조사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현재 증거 자료가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건 발생지가 북한지역에 해당하여 실지조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본 사건과 관련된 거의 모든 진술을 고령의 생존자 2명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점, 또한 그나마 생존자도 다른 지역출신인 진실규명 대상자들과 유형생활 이전에는 서로 친분관계가 없어 체포경위 등 그들의 구체적 반탁운동행적에 대해 진술할 수 없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추가조사를 통한 더 이상의 진실규명은 어렵다고 판단되어 본 사건은 일부(一部)진실 규명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