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이성지의 독립운동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171
결정유형
진실규명불능결정
사건유형
항일독립운동
첨부파일
이성지의 독립운동 사건.pdf [7490295 byte]
 

1. 이성지가 서울 중동학교 재학시절 항일 학생운동을 하였다는 주장은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되지 못하여 진실을 규명할 수 없었다.


2. 이성지가 활동한 1925년의 지도 소작쟁의는 지주들의 소작권 이동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농민운동이며, 항일독립운동과 직접 관련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3. 지도 소작운동의 목표는 소작료 납입에 관한 사항이며, 소작회의 강령에서 항일독립운동을 목표로 하는 구호를 발견할 수 없었다.


4. 이성지가 지도 소작인공조회 활동으로 말미암아 광주지방법원에서 20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나, 이유는 주거침해이며 형량도 미미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25년 지도 소작쟁의가 종결된 이후 이성지의 계속된 항일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성지가 지역의 엘리트로서 학교건립과 향교 활동 등 교육․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러한 사실과 항일독립운동의 직접적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