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나주 동박굴재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82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나주 동박굴재 사건.pdf [26689987 byte]
 

1. 서치호 외 27명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2월 26일 정오경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뒷산(속칭 동박굴재)에서 나주경찰서 특공대원들에 의해 집단총살당했다.

2. 위 사건의 경위를 보면, 나주경찰서 특공대가 1951년 2월 24일 나주시 봉황면 송현리 원봉마을 주민 3명을 ‘빨갱이’로 지목, 연행하여 봉황지서에 감금하였다가 2월 26일 새벽에 봉황면 철천리 3구 선동마을로 끌고 갔다. 비슷한 시각 경찰 특공대원들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나주시 봉황면 선동마을과 철야마을 주민들을 각각 소집한 후, 입산자(入山者)의 가족과 현장에서 지목된 젊은 남자들, 가족의 연행에 항의하는 여성 등 29명을 따로 분류하였다. 당일 정오경 경찰 특공대는 송현리 주민 3명과 분류한 철천리 주민 29명 등 총 32명을 앞뒤에서 포위하여 철천리 뒷산(동박굴재)으로 끌고 가서 총살했는데, 그 중 4명은 현장에서 달아나 생존하였다.

3. 조사결과, 위 사건의 희생자는 서치호(다-2457), 김도관(다-2458), 이동(다-2459), 양창호(다-2460), 안만제(다2461), 김도현(다-2462), 정문채(다-2463), 정찬규(다-2465), 김다복(다-2466), 최성교(다-2468), 최정교(다-2469), 서일기(다-2472), 김옹구덕(다-2472), 서정수(다-2473), 홍공순(다-2474), 서방열(다-2475), 서판대(다-2476), 임미례(다-2476), 서광순(다-2477), 정병수(다-2478), 서공수(다-2479), 최애순(다-2479), 정판옥(다-2480), 정승주(다-2481), 정홍점(다-2482), 홍홍현(다-2482), 서상채(다-2483), 안세월댁(미신청) 등 모두 28명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4. 희생자 대다수는 나주시 봉황면 철야마을, 선동마을, 원봉마을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20~30대가 가장 많았고, 여성도 7명이나 포함되었다.

5. 조사결과, 희생자들은 모두 비무장, 비전투원인 민간인이었음이 밝혀졌다. 다만 철천리 주민 중 일부 젊은 사람들이 인민군 점령기에 점령정책에 동조한 경우가 있었고, 수복 후에는 그들 중 상당수가 입산한 일이 있었다. 희생자들은 사건 발생 당시 인근 다도면 국사봉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빨치산에게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혐의 아래 집단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찰이 주민분류 기준으로 처형대상자 ‘명단’을 사용했다는 증언을 통해 볼 때 이 사건은 계획적인 ‘입산자 가족 및 부역혐의자 임의처형(任意處刑)’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경찰기록에는 이들이 작전 중에 사살된 ‘적’으로 되어 있어 민간인희생의 실상이 은폐된 채 공비토벌 전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6. 나주경찰서 특공대는 처형대상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부역 여부 또는 빨치산 협력여부에 대해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법적 처리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설령 희생자들이 실제 부역혐의자, 빨치산 협력자였다고 할지라도 나주경찰서 특공대는 전시 계엄령 하에서 부역혐의 민간인을 처벌하는 최소한의 근거가 될 수 있었던 「국방경비법(國防警備法)」,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非常事態下의 犯罪處罰에 關한 特別措置令)」중 어느 것도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또한 특공대는 당시 이와 같은 무차별적인 부역자 처벌을 막기 위해 제정된 「부역행위특별처리법(附逆行爲特別處理法)」과 「사형금지법(私刑禁止法)」이 있었음에도 이를 준수하지 않은 채 주민들을 즉결처형하였다.

7. 나주경찰서 특공대는 수복 이후 공비토벌과 치안유지를 위해 나주경찰서 소속 경찰과 의용경찰로 구성되었는데, 이 사건의 직접 가해자는 봉황면에 파견된 특공대 1개 소대(소대장 공명희, 孔明喜)로 확인되었다. 상급 지휘기관인 나주경찰서 서장(경감 김영태, 金永台)이 피해 주민들의 연행 및 총살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본 사건의 지휘․명령권은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의 권한은 상부기관인 전라남도경찰국-치안국-내무부로부터 위임된 것이므로 이 사건과 같이 경찰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민간인희생의 최종적 책임은 국가에 귀속된다고 할 수 있다.

8. 나주 동박굴재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소임을 지켜야 하는 경찰이 관할지역 주민을 임의적으로 불법 처형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었다. 전시 비상사태하에서 법적절차를 충분히 지키기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비무장 민간인들을 즉결처형한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이다. 희생 당사자의 죽음도 억울하지만 유족들 역시 불시의 가족구성원 상실 이후 지금까지 경제적 고통과 심리적 위축을 크게 겪었고, 소수지만 연좌제(連坐制)에 따라 직업선택이 제한된 경우도 있었다. 나주 동박굴재 사건의 진실이 이와 같이 규명되었기에 국가는 사건 희생자 및 관련 유족들에게 성의를 다하여 사과하고 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