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나주 동창교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45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나주 동창교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pdf [21186974 byte]
 

1. 나주 동창교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하 ‘나주동창교사건’) 조사 결과, 1951년 1월 20일 나주군 세지면 오봉리 동창교 일대에서 오봉리(동창마을)․벽산리(섬말마을) 주민 74명 이상이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제2대대 제5중대 군인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총살된 사건의 전말이 규명되었다.

2. 위 사건의 경위를 보면, 1951년 1월 20일 국군 제11사단 제20연대 제2대대 제5중대(이하 5중대)가 세지지서 경찰관, 세지면장, 구국총력연맹원, 지역유지 등을 동반하고 나주군 영산포에서 세지면으로 진주하던 중 노상의 행인 2명을 사살하고, 주민 백형렬을 체포하였다. 뒤이어 5중대는 오봉리(동창마을)와 벽산리(섬말마을)로 진입하여 가가호호 수색하고 주민 200여 명을 동창교 아래 만봉천 개천가로 집결시킨 후 백형렬, 노점순과 그의 아기(당시 3세)를 총살한 다음, 군․경 가족을 제외한 청․장년층 남자들만 가려내어 동창교 인근 신북여관 옆 밭으로 데려가서 전원 총살하였다.

3. 조사결과 확인된 희생자는 선병대․홍석수․백정상․노태섭․조인규․나순채․서범수․조동규․홍두환(이상 다-2596), 김경용․김갑술(이상 다-2596, 다-8903), 정도집(다-6647, 다-10001), 승갑동(다-7219), 황매임․추경화․추양오․추덕임(이상 다-8233), 유우옥(다-8781), 나순길(다-10033), 김연규(다-10308), 조동규(다-10449), 양금득(다-10570), 박장두․이태관․노점순․노점순의 딸․정판일․김만용․이목미․임영오․백형렬(이상 미신청) 등 모두 31명이다. 이 인원과 ‘나주시 세지면 동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추진위원회’에 의해 파악된 별도의 희생자 명단까지 고려하면, 본 사건의 희생규모는 최소 74명에서 최대 140여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희생자는 대부분 오봉리․벽산리 주민인 농민들이었고, 일부는 영암군 금정면 등지에서 온 피난민들이었다. 희생자 전원이 비무장 민간인이었고, 노인․여성․어린이․유아도 포함되어 있었음이 조사결과 확인되었다.

5. 이 사건의 발생장소는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치안상황이 불안정하고 빨치산의 출몰이 빈번했던 미 수복지구에 속해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5중대는 이 지역 주민들이 공비들에게 포섭되었거나 협조하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청․장년층 남자들을 가려내어 총살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정황증거는 이 사건이 단순 우발사건이 아니라 의도성이 짙게 개재된 사건이었음을 말해준다.

6. 집단총살에 이르기까지 희생자들의 혐의에 관한 어떠한 확인 절차도 없었고, 처벌에 관한 적법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전시 계엄령하에서 민간인의 범죄행위를 처벌하려면 「국방경비법」, 「국가보안법」, 「비상사태하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 「계엄하군사재판에관한특별조치령」 등이 적용될 수 있었으나, 이 사건에서는 그 어느 법령도 적용된 바 없다. 긴급한 작전상황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확인과정이나 적법절차 없이 비무장 민간인을 임의로 집단총살한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이고, 국제법상으로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족들 또한 지금까지 크나큰 심리적 위축과 경제적 고통 및 사회적 불이익을 겪으며 살아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7. 불법적 민간인희생사건이면서 큰 후유증을 남긴 이 사건의 가해자는 5중대 대원들이고, 그 직접 책임자는 현장 지휘관인 중대장(대위 권준옥)이었다. 또한 법적 및 도의적 책임은 작전상 지휘․명령 계통을 따라 2대대장(소령 유갑열) → 20연대장(대령 박기병)→ 11사단장(준장 최덕신)으로 계속 추급하여 물을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국가에 귀속된다고 할 수 있다. 나주동창교사건의 진실이 이와 같이 규명되었기에, 국가는 사건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성의 있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및 명예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