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홍의식의 진해에서의 항일독립운동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151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항일독립운동
첨부파일
홍의식의 진해에서의 항일독립운동.pdf [4875200 byte]
 

1. 신청인의 주장과 각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인 홍의식(洪懿植)과, 호적등본과 국가보훈처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형인명부의 홍이식(洪彛植)과의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수형인명부와 호적상에 홍이식은 생년월일이 1893년 5월 3일, 주소는 경남 창원군 진해군 경화동 74번지로 기재되어 있는데,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임시총회 때 검거자 명단에 있는 홍의식의 주소는 경남 창원군 진해면 경화리, 연령은 32세로 되어 있다. 홍이식이 1893년생이므로 홍의식이 1924년에 32세라면 같은 나이라 볼 수 있고, 주소도 같으므로 동일인물로 판단되며, 진해시청 호적계에 문의한 결과, 1893년을 전후한 시기에 경화(리) 출신으로는 홍이식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로 볼 때 호적상으로는 홍이식이지만 홍의식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 홍의식이 활동하는 과정에서 검거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1924년 4월 20일 경성에서 열린 조선노농총동맹임시총회에서 백광흠, 박흥곤, 한해, 안준, 정운해 등과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5월 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 그리고 1926년 3월 진해예배당 습격사건으로 검거되었으나 집행유예된 기록이 있으며, 1926년 6월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예배설교방해훼기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4월형에 처해진 사실이 기록된 수형인명부가 있다.


3. 홍의식이 일제강점기 전 시기에 걸쳐 진해에서 다방면에 걸쳐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여러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1923년 진해청년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비롯하여, 1928년 조선인 노동자상해 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위원으로 선정되는 등 진해청년회에서 활동한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동시기에 진해소작회 활동을 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진해지역 농민들이 소작료 이중부담 등의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기 위해 1923년 6월 진해소작회를 결성하는데, 홍의식은 창립당시부터 참가하였고 경남노농운동자 간친회, 조선노농총동맹 등에 진해소작회 대표로 참석하는 것으로 볼 때 홍의식이 진해소작회 대표로 주요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1927년 10월 신간회 창원군 지회의 창립대회 개최 시, 홍의식은 선전부임원에 선출된다. 신간회 창원지회 설립당시부터 참여한 홍의식은 1931년 제4회 정기총회에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된다. 1928년 창원신간지회가 주최한 전(全)창원사회운동자망년대회에서는 「하구(下龜)야학교정세」에 대해 보고한 적이 있어 야학교 활동도 병행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32년 진해장학회 활동을 하고 있고, 1939년 조선어과목폐지에 항거하는 진해 제3소학교 부형회 평의원으로 선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