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주문진지역 장금출․장종원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196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주문진지역 장금출 장종원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pdf [6845364 byte]
 

1. 장금출은 국민회 활동 및 한국전쟁 전에 무장공비가 침입한 사실에 대해 신고하였다는 이유로 삼교리 자택에서 1950년 양력 8월 3일 경 지방좌익들(김○○ 등)에 의해 끌려갔다는 것을 "6․25사변 피납치자명부"와 참고인 진술을 통해 확인하였다. 또한 1950년 음력 7월 15일(양력 8월 28일)에 피살되었다는 것을 "6․25사변 피살자명부"로 확인하였다.



2. 장종원은 대한청년단(한청 구선전계장) 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전쟁 전에 장금출의 집에서 무장공비와 경찰들이 교전할 때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삼교리 자택에서 지방좌익들(정○○, 김○○ 등)에 의해 1950년 음력 7월 5일(양력 8월 18일)경 끌려가서 1950년 음력 7월 15일(양력 8월 28일)에 피살되었다는 기록을 "6․25사변 피살자명부"로 확인하였다.



3. 신청인들은 지방좌익들이 인민군과 동행하여 피해자들을 납치하여 갔다고 진술하였다. 이를 조사한 결과, 당시 동행한 다른 지방좌익들과 인민군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당시 활동했던 삼교리 지방좌익들은 김○○, 김○○, 최○○, 김○○, 박○○ 등이 있었고, 그 시기 강릉에 주둔했던 인민군은 내무서 보안대(370부대), 공화국 경비대(‘리주춘 중대’ 등)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4. 신청인들이 희생장소로 주장하는 ‘연곡면 수리조합’은 당시에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당시 연곡면 신왕리 하천 주변에서 좌익세력(김○○ 등)에게 우익인사가 납치되는 피해를 입은 사례를 발견하였으나, 1950년 7~8월 사이에 민간인 희생은 없었다는 참고인 진술로 본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1950년 7~10월 사이에 학산리 구정지서 앞 냇가에서 민간인 37명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을 발견하였으나, 본 사건의 피해자들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