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서중현의 완도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15
결정유형
진실규명불능결정
사건유형
항일독립운동
첨부파일
서중현의 완도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 사건(불능결정).pdf [3312946 byte]
 

1. "완도군 항일운동사"에 게재된 내용에 의하면, 서중현은 1922년 완도군 소안도에서 항일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는 구체적 문헌자료가 아닌 이월송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되었는데, 현재 이월송의 사망으로 인해 추가증언 확보가 불가능하여 서중현이 수의위친계에서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밖에 서중현의 수의위친계 활동에 관한 참고인 증언이나 관련 자료 확보가 불가능하였다.



2. "완도군 항일운동사"에 수록된 신간회 목포지회 설립대회(1927.6.18) 때 찍었다고 하는 단체사진에서 서중현의 모습이 확인된다. 하지만, 설립 당시의 간부명단 및 이후의 간부명단에서 서중현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아, 서중현이 일반회원 혹은 다른 자격으로 설립대회에 참가하여 사진을 찍었으리라 추정되나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였다.



3. 신청인 및 참고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서중현은 1934~37년경 목포, 대구에서 수형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1930년대에 발행된 광주지검·광주지방법원·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대구복심법원 판결문을 검색하였으나, 서중현의 행적이 나타나는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참고인들은 서중현이 수형생활 이후부터 해방이전까지 금당도 육산리 마을회관에서 야학활동을 전개했다고 진술하였다.



4. 일제시기에 발행된 신문을 통해 다음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서중현은 1924년 11월 조선의 기근상황을 타개하고자 전남 완도군 금일면에서 조직된 금일기근구제회(金日饑饉救濟會)의 위원이 되어 순회강연회 개최, 구제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후, 서중현은 1926년 1월 동아일보 완도지국 기자로 임명되었으며, 1927~1928년에는 전남 완도군 금당도에 소재한 금당학교 교원으로 활동하다가 ‘불온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교원직을 박탈당하였다.



5. 이상, 서중현의 행적 중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항일독립운동이라 일컬을 수 있는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중현이 1924년 전남 완도군 금일면에서 조직된 금일기근구제회 위원으로서 강연회 개최·기금 마련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26년 동아일보 완도지국 기자에 임명되었으며, 1927~1928년에는 금당도에 소재한 금당학교 교원으로 활동하였으므로 서중현이 사회활동 및 교육활동에 참여한 사실은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