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장동엽의 남원 3.1독립만세운동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96
결정유형
진실규명불능결정
사건유형
항일독립운동
첨부파일
장동엽의 남원 3.1독립만세운동(불능결정).pdf [3886060 byte]
 

1. 1919년 4월 3일 남원군 덕과면과 사매면에서 500여 명이 참가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다음날인 4월 4일은 남원 장날을 이용하여 1,000여 명이 참가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당시 장동엽은 결혼하여 처가가 있는 남원군 사매면에 거주하였는데, 4월 4일 남원 3ㆍ1독립만세운동 주동자로 애족장을 받은 이두기, 이형기의 처남이다. 따라서 장동엽이 처남 이두기, 이형기의 영향을 받아 함께 남원 3ㆍ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있다.



2. 장동엽이 남원 3ㆍ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적시된 자료로는 「피고인 이성기 신문조서」 번역본ㆍ「남원삼일운동약사」ㆍ「남원지구 3.1운동 의거인 명단」ㆍ「확인증명서」ㆍ「남원삼일운동기념비제막 기념패 장동엽의사 유족 장상규」가 있다. 그러나 근거가 되는 신문조서ㆍ판결문 등의 원본을 찾을 수 없었으며, 그 당시 상황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사망하여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없었다.



3. 남원 3ㆍ1독립만세운동과 관련된 그 외의 국가 포상자의 판결문 등에서 장동엽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1974년 동아일보가 남원삼일운동기념비를 세울 때, 작고한 남원 향토사학자 이백수가 남원 3ㆍ1독립만세운동을 확대시키자고 제안하여 다른 사람 명단도 들어갔고 동문지기, 북문지기가 만들어졌다’라는 증언이 있는 바, 「남원삼일운동약사」내용을 입증자료로 채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4. 「피고인 이성기 신문조서」(1919. 4. 4.) 번역본에 의하면, 장동엽은 이성기 등과 함께 남원 북부시장에서 군중을 지휘하고 강력하게 독립만세운동을 호소하였다는 것이고, 「남원삼일운동약사」에 따르면 장동엽은 남원 사성문 수비책의 한 사람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외치지 않고 도주하는 사람을 제지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으로, 이 두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 그 진위를 밝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