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고창 월림 집단희생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32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고창 월림 집단희생 사건.pdf [15658053 byte]
 

1.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10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2㎞ 떨어진 도곡리 시목동 옆 계곡과 봉암산 계곡에서 공비 토벌의 임무를 띄고 있던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 제3중대(지휘관 김용식)가 월림마을 주민 89명을 집단 총살하였으며 부상자 포함 6명이 현장에서 생존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2.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일 제59차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전쟁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인 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3. 이 사건은 한국전쟁기에 인민군이 남한지역을 점령하여 특정한 지역 차원의 권력 담당 주체가 뒤바뀌는 와중에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성씨 간의 갈등이 이념적 대립과 결합하여 상호 보복 살해의 양상으로 발전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인민군 점령 이후인 1950년 10월경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 용전마을에서 지방 좌익과 죽림마을 천씨들에 의해 김용식 일가 53명이 살해된 바 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제3중대 지휘관 김용식이 사적 원한을 갚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하여 천씨 일가 등을 집단 살해하였다.


4. 가해자인 김용식은 사건 당시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 제3중대장으로서 자기 고향인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천씨 등 89명을 살해한 죄로 구속 기소되어 1955년 12월 26일 대구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당시 김용식에 대한 재판 판결문을 통해 가해이유, 희생자의 규모와 신원이 대략 밝혀져 있다.


5. 이 처럼 이 사건은 52년 전에 사법부에 의해 확정 판결된 사건이고 김용식 개인에 대한 처벌은 되었으나 김용식에 의해 집단 살해된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지금까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는 등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진실규명을 신청하였다. 또한, 사건 현장에서 집단총살 계획을 보고받은 다음 재가한 대대장 차일혁과 사건을 집행한 경찰관들에 대한 조사나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건의 배경과 원인, 경찰의 작전상황과 사건경과 등에 대한 사건의 진상이 충분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6.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적 차원에서 본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여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사건과 관련된 양 측이 화해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주안점을 두어 화해와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7. 이 사건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무장한 경찰부대가 공비 소탕, 부역자 처벌이라는 공적인 임무를 내세워 비무장ㆍ비교전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것으로 이는 김용식이 사적 원한을 갚기 위해 공권력이 불법적으로 남용한 사례이다.


8. 또한, 김용식 및 소속 부대원들의 상급 지휘관인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 대대장, 전북경찰국 등은 지휘계통을 통해 사건 발생 전․후 사건 내용을 보고 받은 바 있으나 사건 발생 후 3일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 측의 신고가 없었다면 사건은 영원히 은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주민의 신고에 의해 뒤늦게 김용식을 사법 처리하기는 했으나,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잘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