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좌익에 의한 서천등기소 창고 집단희생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178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좌익에 의한 서천등기소 창고 집단희생 사건.pdf [1609817 byte]
 

1. 박규하를 포함한 약 240~250명의 서천 주민들이 1950년 9월 27일 오전 1시 서천군 서천등기소 창고에서 감금된 채 좌익세력에 의해 불에 타서 희생되었음을 문헌자료와 참고인 진술을 통해 확인하였다.


2.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된 희생자 52명 중 46명의 희생사실은 문헌자료에서 확인하였다. 나머지 6명의 희생자에 관한 문헌자료는 찾을 수 없었으나, 신청인과 가족이 시신을 확인하였다고 진술하고 참고인들도 희생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진술을 하였다.


3. 희생자들은 대체로 1950년 9월 중순경 분주소, 내무서 등으로 잡혀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가 9월 25일경 다시 체포되어 27일 새벽 1시에 희생되었다. 반공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경우에는 1950년 7월경 잡혀가 계속 수감되어 있다가 9월 27일 새벽 1시에 희생되었다. 또한 대전형무소로 이송되어 희생된 경우가 있는데, 신청인과 참고인들에 의하면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우익성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4. 주민 진술 및 문헌자료에 나타난 희생자 수는 50여 명부터 360명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문헌자료와 목격자(생환자 및 당시 보초)의 진술을 검토․분석하면 희생자 수는 약 240~250명 정도이다.


5. 희생자들이 희생당한 경위는 ‘신분’과 ‘반공활동’을 들 수 있다. 신분의 경우, 서천경찰서가 1951년 5월 15일에 작성한 「피살자명부」에 의하면 희생자들이 경찰, 국군, 대한청년단, 지역유지, 우익협조자였기 때문에 희생되었다. 반공활동의 경우, 희생자들은 태극기를 제작하거나 아군함대에 연락하였기 때문에 희생되었다.


6. 문헌자료에 의하면 학살은 당위원회에서 결정했고 정치보위부에서 집행했다. 구체적인 가해자는 서천군노동당위원장 구○○, 서천군인민위원장 이○○, 서천군정치보위부장 이△△, 서천군정치보위부원 정○○, 이▽▽, 강○○, 윤○○, 임○○, 김○○, 서천내무서장 장○○, 서천내무서부서장 기○○, 세포위원 신○○, 소속미상의 석○○이다. 


7. 가해자 구○○은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으며 이○○은 잡히지 않고 빨치산 활동을 계속했다. 정○○과 이▽▽은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강○○은 경찰에게 체포되어 충청남도지방군검경합동조사반으로 넘겨져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나머지 가해자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았다.


8. 따라서 본 사건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26조의 규정에 의하여 진실규명되었음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