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당진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201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당진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pdf [2367306 byte]
 

1. 1950.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950. 7. ~ 9. 인민군이 점령했던 시기 당진군에서는 적대세력에 의해 크고 작은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다. 희생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크게 인민군이 당진군에 진입했던 1950. 7. ~ 9.과 인민군이 당진군에서 퇴각하던 1950. 9. 27. ~ 28.로 나뉘는데, 인민군이 퇴각하던 1950. 9. 28.을 전후하여 희생규모가 큰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2. 당진읍에서는 읍내리 공동묘지와 시곡리 야산에서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다.


먼저, 읍내리 공동묘지에서는 1950. 8. 3.과 1950. 9. 27. 밤 ~ 9. 28. 새벽에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다. 희생자들은 당진군 각 읍ㆍ면에서 당진내무서로 연행되어 감금되었다가 다시 당진내무서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1950. 8. 3.과 1950. 9. 27. 밤부터 9. 28. 새벽까지 발생한 사건의 희생규모는 최소 98명에서 최대 210여 명이다. 진실규명대상자 중 이 사건 희생자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구자화(具滋化) 등 14명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의 희생자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강위영(姜胄榮) 등 84명이다.


다음으로, 당진읍 시곡리 야산에서도 1950. 9. 28. 밤에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다. 희생자들은 송악면 거주자였는데, 1950. 9. 22 ~ 28. 사이에 송악면 기지시리에 있는 송악분주소로 연행되어 감금되었다가, 다시 기지시리 부근 시곡리 야산으로 끌려가 야산 골짜기에서 총살되거나 죽창․쇠창에 찔려 희생되었다. 희생규모는 약 20명이다. 진실규명대상자 중 이 사건 희생자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구성회(具聖會) 등 3명이다.


3. 석문면 노학산에서도 1950. 9. 28. 밤에 희생 사건이 발생하였다. 희생자들은 석문면 거주자였는데, 1950. 9. 26. ~ 28. 사이에 석문면 통정리에 있는 석문분주소와 양조장으로 연행되어 감금되었다가, 다시 노학산으로 끌려가 노학산 방공호에서 총살되거나 죽창․쇠창에 찔려 희생되었다. 희생규모는 약 20명이다. 진실규명대상자 중 이 사건 희생자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김만기(金萬基) 등 5명이다.


4. 그 외 합덕읍과 신평면에서 희생당한 사건은 주로 1950. 9. 중순경에 발생하였다. 합덕읍에서는 충남 예산군에 거주하던 장기영(張基永)이 합덕읍 성동리 성동산 성동절터에서 희생된 사건과 송악면 봉교리에 거주하던 이은명(李殷明)이 당진내무서로 연행되었다가 합덕읍 구양교 밑에 수장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신평면에서는 신송리에 거주하던 유문준(兪文濬)이 좌익세력에 의한 연행을 피하고자 피신하였다가 신평면 거산리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5. 문헌자료와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사건의 실재와 진실규명대상자의 희생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진실규명대상자들은 주로 1950.을 전후한 시기 그들의 경제적 지위, 우익단체 활동경력 등으로 인해 정치보위부원과 지방좌익에게 희생되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