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80년 사북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32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인권침해
첨부파일
80년 사북 사건.pdf [11968626 byte]
1. 신청인이 속한 (주)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광부들은 1970년대 정부의 노동3권 탄압 등으로 인해 기본권이 제한된 노동환경에 처해 있었고, (주)동원탄좌 경영주의 부당한 임금 책정과 노조 지배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있었다. 또한 지역 경찰, 정보기관 등 공권력은 회사 측과 유착하여 노조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었다. (주)동원탄좌 노동조합은 1979. 4.부터 6대 노조지부장선거 부정의혹을 둘러싸고 1년여 동안 노조 운영이 파행사태를 겪고 있었다.
2. 1980. 4. 18. 오후 이○○ 노조지부장과 사북지서장 어○○ 경위는 사북지서 앞마당에서 노조원들에게 집회를 열어 토론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1980. 4. 21. 14:00경 노조원들은 예정된 집회가 불허된 사실을 알고 그에 항의하였고, 이 광경을 찍고 있던 정선경찰서 소속 사복 경찰관이 도주하면서 경찰차량으로 광부들을 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뒤 교대 근무를 위해 출․퇴근하는 광부들이 합세하면서 군중들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고, 교통사고로 인해 흥분한 광부들은 사북지서 등 주요 건물들을 습격하고 기물을 파괴하였다.
3. 1980. 4. 22. 오전 일단의 광부와 부녀자들은 노조지부장 이○○의 부인을 사북광업소 정문 게시판 기둥에 묶어놓고 집단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강원도경 경찰의 진압작전에서는 광부들과 주민들이 던진 돌에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작전이 실패하면서 강원도지사와 (주)동원탄좌, 광부 대표들과의 3자 협상이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1군 계엄사령부는 ○○특전여단 2개 대대병력을 현지에 투입키로 결정했다.
4. 1980. 4. 24. 08:00경 노․사․정 대표가 11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10여 일 후 군․검․경으로 구성된 계엄사령부 ‘사북 사건 합동수사단’은 200여 명의 광부와 주민들을 연행하여 물고문, 고무호스 구타, 각목 구타 등의 가혹행위를 하였고, 임산부를 포함한 40~50명의 부녀자들을 상대로 성적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1군 검찰은 이 가운데 폭력행위를 주도하고, 경찰에 투석하고, 노조지부장 부인 린치 사건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31명을 기소하였고, 1군계엄보통군법회의는 이원갑, 신경, 최○○, 신○○, ○○○ 등 관련자들에게 징역 5년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하였다. 사북 사건 이후 출소한 광부와 그 가족에 대한 취업 제한과 감시는 계속되었으며 일부 출소자들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사북을 떠나게 되었다.
5. 조사결과에 따라, 국가는 부당한 공권력행사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관련자들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며, 사북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자행된 위법한 가혹행위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