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127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인권침해
첨부파일
구로 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 사건.pdf [12486774 byte]
1. 본 사건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경작하던 구로동 일대의 농지가 1942년 일본 육군성(陸軍省)에 강제로 수용된 이후 일제가 군용지로 사용하지 않자 농사를 계속 지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귀속농지를 관리하던 신한공사, 중앙토지행정처 등으로부터 농지관리를 받으며 농사를 지었다.
2. 1961년부터 국가는 피해자들의 경작지인 사건 농지에 간이주택, 공영주택을 짓고,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 등을 조성하였고, 피해자 200여 명은 사건 농지가 농지개혁법에 의한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1950년 농지분배받은 자신들의 소유라며 1964년 국가를 피고로 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1968년 이후 대부분 승소하였다.
3. 그러나 국가는 이들의 소송이 사기소송이라며 1968년부터 수사를 시작하였는데 수사의 진척이 없자 1970년 7월 피해자들을 집단적으로 긴급체포, 연행한 후,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권리포기를, 아직 소송을 진행 중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소의 포기를 요구하였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소하여 소송사기죄로, 그리고 농지분배사실을 증언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위증죄로 각각 처벌하였다.
4. 조사결과 진실화해위원회는 본 사건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관할청으로부터 농지분배사실을 확인한 사실, 영등포구청으로부터 소송의 기초자료가 된 농지 분배 서류의 사본을 교부받아 소송을 제기한 사실, 또 민사소송 진행 전에 서울시가 사건 농지의 농지분배사실을 확인한 후 농지분배 취소절차를 밟은 사실 등을 종합해보건대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제기가 법원을 기망(欺罔)한 것이라는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5. 피해자들은 사건 농지를 일본에 수용당하는 1942년 이전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1960년대 초까지 지속적으로 경작하여왔고 관할청도 이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또 농지개혁법에 따른 농지분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간에 농지분배에 대해 의견이 불일치했고, 이를 경험한 피해자들이 농지분배사실을 믿었다는 점에서 소송제기 자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피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소송사기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6. 또한 정부는 정책을 강행하기 위하여 증거관계도 불분명하고 도주 또는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고 이미 상당수의 피해자들이 무혐의, 기소유예 등으로 불기소처분된 바 있는 사건을 재수사하여, 체포이유도 고지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을 집단적으로 불법연행하여 가혹행위를 가하고 위법하게 권리포기와 위증을 강요하였다. 이것은 형사소송법이 정한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또 농지분배사실을 인정하는 데 유리한 서울시 공문들이 새롭게 발견되었는데 이는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
7. 국가는 수사과정에서의 석방을 전제로 민사소송과 권리를 포기할 것을 강요한 국가기관의 행위로 인하여 권리행사를 방해받은 백상기 등 144명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8. 또 국가는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 타인의 권리행사방해, 허위증언 등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로 재판 도중 사망하여 공소기각된 박후봉 등 12명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고, 같은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백원만 등 26명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