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김포 부역혐의 희생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8-11-04
조회수
18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김포 부역혐의 희생사건.pdf [1798426 byte]

 

1. 장문숙 외 109명을 포함하여 600여 명 이상의 김포군 주민들이 9․28수복 후부터 1․4후퇴 직전까지 부역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김포경찰서와 그 지휘를 받는 각 지서 경찰․치안대에 의해 고촌면 천등고개, 김포면 여우재고개․독잣굴, 대곶면 소라리고개, 양동면 마곡 한강변, 양촌면 양곡지서 뒷산, 하성면 태산골짜기 등에서 집단총살당했다.


2. 국군이 김포지역을 수복한 직후인 1950년 9월 중순경부터 경찰과 치안대는 김포군 주민 중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한 혐의가 있는 자와 그의 가족을 연행하여 살해하였다. 고촌면에서는 1950년 10월 1일경부터 신곡리 장문숙 등 8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고촌지서 양곡창고에 감금되었다가 1950년 10월 12일경 김포경찰서로 이송된다면서 천등고개 방공호로 끌려가 총살당하였다. 김포면에서는 1950년 9월 18일경부터 북변리 정순영 등 20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김포경찰서 유치장과 경찰서 내 방공호에 갇혔다가 1950년 10월 11일경 여우재고개와 독잣굴 부근에서 총살당했다. 대곶면에서는 쇄암리 이달재 등 30여 명의 주민들이 대곶지서 창고에 갇혀 있다가 1950년 11월 말경 소라리고개 골짜기에서 총살당하였다. 양동면에서는 1950년 9월 22일경 마곡리 안삼순 등 100여 명의 주민들이 양동지서 수리조합창고에 갇혔다가 9월 27일경 마곡리 한강변에서 총살당하였다. 양촌면에서는 1950년 9월 28일경부터 수참리 정경순 등 30여 명의 주민들이 양곡지서 유치장과 지하 방공호에 갇혀 있다가 1950년 11월 6일경 양곡지서 뒷산에서 총살당하였다. 하성면에서는 1950년 9월 말경부터 가금리 김순명 등 100여 명의 주민들이 하성지서 옆 2개 창고에 갇혀 있다가 1950년 10월부터 12월까지 하성지서 뒷산(태산골짜기), 마곡리 야산(태산 건너편 야산), 석탄리 강변, 하성성당 골짜기, 하성국민학교 뒤에서 총살당하였다. 이외에 월곶면 등에서도 집단희생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3. 조사결과, 이 사건의 희생자는 장문숙(張文淑), 송해붕(宋海鵬), 이경창, 윤희용(尹喜龍), 김기산(金起山), 이앙순(李卬順), 기○○(奇○○), 김○○(金○○), 기○○(奇○○), 기○○(奇○○), 기○○(奇○○), 기○○(奇○○), 조○○(曺○○), 기○○(奇○○), 기○○(奇○○), 황○○(黃○○), 기○○(奇○○, 이상 미신청), 정순영(鄭淳榮, 다-4043), 정순달(鄭淳達), 민문자(閔文子), 한말녀(韓末女), 정범모(鄭範模), 정경분(鄭敬分), 정환국(鄭煥國), 이정순, 김기순, 신춘실, 신○○, 정영현(鄭永鉉), 박연애(朴蓮愛), 정순익(鄭淳翼, 이상 미신청), 심성기(沈聖基), 심현구(沈鉉球), 심덕기(沈德基, 이상 다-9334), 이달재(李達宰, 다-2718), 이원상(李元相), 김경섭(金敬燮, 이상 미신청), 안삼순(安三順, 다-10667), 김덕만(金德萬), 김복희(金福熙), 김옥례(金玉禮), 김정옥(金貞玉), 김한길(金漢吉), 김인길(金仁吉), 이교영(李敎寧), 이의석(李義錫), 김동렬 모친(이상 미신청), 장경선(다-8724), 김동준(金東俊), 김동기(金東基, 이상 미신청), 정경순(다-8329), 김동철(金東徹, 다-10785), 최인덕, 최인준, 최일만, 황범주(黃範周), 김순명(金順明),  강영규(姜永奎), 신관옥(愼冠玉), 강범수(姜范秀), 홍순임(洪順任), 강순희(姜順姬), 강옥희(姜玉姬), 강인자(姜仁子), 강명희(姜明姬), 강대식(姜大植), 강창수(姜昌秀), 유일순(柳日順), 강대용(姜大容), 강대원(姜大元), 강한수(姜漢秀), 조정순(趙丁順), 강덕순(姜德順), 강복순(姜福順), 강봉수(姜鳳秀), 강덕성(姜德成), 최남순(崔南順), 강갑수(姜甲秀), 김경란(金慶蘭), 강용운(姜龍雲), 강송자(姜松子), 강대천(姜大天), 강영수(姜英秀), 김중희(金重姬), 강완수(姜完秀), 강상옥(姜祥玉), 강영근(姜永根), 이정순(李貞順), 강명수(姜明秀), 강명순(姜明順), 강철수(姜喆秀), 강재순(姜載順), 강택수(姜澤秀), 강준수(姜俊秀), 민병택(閔丙澤), 조원순(趙元順), 민진기(閔震基), 민○○(閔鳳基), 민정자(閔貞子), 민군자(閔君子), 여이현(呂伊鉉), 권계성(權季成, 이상 미신청), 권동규(權東奎, 다-8585), 민남기(閔南基), 민성남(閔聖男), 민상기(閔商基), 어윤(魚潤), 어수갑(魚秀甲), 김영재, 민병호(閔丙晧, 이상 미신청)등 110명이었으며, 희생추정자는 이경창외 일가족 12명 등 30명이었다. 조사된 사건의 전체 희생자 수는 600여 명으로 추정되었다.


4.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은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부역혐의를 받았던 주민과 그들의 가족임이 확인되었으며, 이들 중에는 하성면 강범수 일가와 고촌면 기○○ 일가의 경우처럼 가족 중 부역혐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직계가족에서 친인척까지 몰살당한 참혹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부역혐의를 받았던 희생자 중 상당수는 전쟁 전부터 마을의 지도자였다가 인민군 점령기 인민위원회 간부를 맡았던 사람들이었다.


5. 이 사건의 직접적 가해주체는 김포경찰서와 치안대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김포경찰서장의 지휘를 받아야 했으므로 김포경찰서장에게도 가해책임이 있다. 마찬가지로 경기도경찰국에도 가해책임이 있을 것이나 이 기관의 명령 여부는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6. 이 사건이 일어났던 때가 전시 계엄하여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경찰과 그의 지휘․감독을 받는 치안대가 단지 부역혐의자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 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