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김제에서 이석상 등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12-08
조회수
211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김제에서 이석상 등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pdf [3463632 byte]

 

 

1. 문헌기록 자료와 희생사건 당시 김제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진술조사를 통해서 진실규명대상 사건을 조사한 결과, 김제군(현 김제시) 백산면․감곡면(현 정읍시 소재)․금구면․봉남면․금산면․김제읍(현 신풍동)․만경면(현 만경읍) 등지에서 한국전쟁 시기 1950. 7. 20. 인민군의 김제 점령기부터 1950. 9. 28. 후퇴 시까지 전․현직 군인, 대동청년단원․독촉국민회원 등 우익인사, 부유층지주와 그 가족 등을 포함하여 이석상 등 최소 208명이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 중 진실규명대상자 15명, 미신청희생자 193명이 희생되었다.

 
2. 1950. 7. 25(음 6. 11). 이석상(李錫祥)이 백산면분주소 옆 소나무 아래에서 인민군에 의해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3. 1950. 7. 28(음 6. 14). 김윤철(金允喆)이 감곡면 통사동 솟턴재 입구 야산에서 지방좌익에 의해 매장되어 희생되었다. 미신청희생자 김갑동(金甲童), 구인택(具仁澤), 이덕봉(李德奉), 정봉열(鄭奉烈), 공완봉(孔完奉), 이영기(李永基), 이판동(李判同), 고병열(高炳烈), 주만춘(周萬春), 최중식(崔重植), 양길남(梁吉男), 강창업(姜昌業) 등 12명이 함께 희생되었다.


4. 1950. 8. 2(음 6. 19). 최준식(崔俊植)과 송석철(宋錫喆)이 금구면 대화리 금천부락 뒷산에서 인민군에 의해 총살되어 희생되었다. 고창경찰서 무장지서 주임과 성명미상의 2명 등 3명이 이때 함께 희생되었다.


5. 1950. 8. 26(음 7. 13). 김형배(金亨培), 김성두(金成斗), 하치호(河致鎬)가 봉남면 신응리 종정장터 모래사장에서 지방좌익에 의해 매장되어 희생되었다. 미신청희생자 권태술(權泰述), 김일천(金日天), 정기봉(鄭基奉), 라백두(羅白斗), 고순동(高順同) 등 5명이 함께 희생되었다.


6. 1950. 8. 27(음 7. 14). 김두현(金斗玄)이 금산면 금산리 219-2번지 자택에서 지방좌익에게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희생되었다.  


7. 1950. 9. 27(음 8. 16). 임정규(林廷圭)가 김제내무서 길 건너 앞 야산공터에서 지방좌익에 의해 매장되어 희생되었다. 미신청희생자 김기철(金基喆) 등 최소 62명이 같은 시기(9. 20~28.)에 함께 희생되었다.


8. 1950. 9. 27.(음 8.16.) 정판석(鄭判錫)과 부인 김이례(金二禮), 아들 정태봉(鄭泰奉), 딸 정금주(鄭今柱), 젖먹이 아이 2명 등 가족 6명이 만경면분주소 내 우물과 방공호에서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 미신청희생자 김종한, 장성진, 강춘길(姜春吉), 곽병일(郭炳一), 이남근(李南根), 최정열(崔正烈), 유상덕, 이정신(李正新), 최남인(崔南寅), 곽옥진, 유금주(柳錦柱), 송은숙(宋銀淑), 송창호(宋昌浩), 고순동(高順同), 이옥진(李玉振) 등 만경교회 교인 15명이 이때 함께 희생되었다. 만경면분주소에서 희생된 총인원은 최소 53명으로 확인되었다.


9. 진실규명 미신청 사건으로 1950. 9. 27~28. 만경면 소토리 공동묘지와 만경면 화포리 창자마을에서 지방좌익에 의해 만경면 화포리 부유층인사와 그 가족들 최소 65명이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