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예산지역에서 고영준 등 25명의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12-08
조회수
213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예산지역에서 고영준 등 26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의 건.pdf [3601954 byte]

 

 


1. 문헌자료와 한국전쟁 당시 예산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진술조사를 통해서 진실규명 신청된 사건을 조사한 결과, 인민군이 예산을 점령한 1950. 7. 12.부터 퇴각한 1950. 9. 28.까지 진실규명대상자 25명과 미신청희생자 20명을 포함한 45명의 희생사실을 확인하였다.


2. 1950. 9. 9.경, 우체국 집배원이었던 이종성(李鍾成)과 고덕면 상궁리 이장이었던 이춘성(李春成)이 박○○ 등 지방좌익에게 끌려가서 고덕분주소에 수감되었다가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은보 근처에서 이○○ 등 지방좌익에게 희생되었다. 그리고 미신청희생자 고흥억이 함께 희생되었다.


3. 예산내무서에 수감되어 있던 진실규명대상자 고영준(高榮俊), 이병수(李秉洙), 김동갑(金東甲), 이순봉(李順奉), 이해문(李海文) 등 5명과 미신청희생자 최익문(崔益文), 이종필(李鍾弼), 송낙순(宋洛淳), 윤익중(尹益重), 신완교(申完敎), 진대순(陣大淳), 장갑순(張甲順), 김영주(金永周) 등 8명이 예산읍 향천리 공동묘지로 끌려가서 1950. 9. 25. 밤부터 1950. 9. 27. 새벽 사이에 내무서원과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 예산내무서에 수감되어 있던 진실규명대상자 이성우(李成雨)와 미신청희생자 주붕학이 예산읍 예산리 오리동 천변으로 끌려가서 1950. 9. 26.경 밤에 내무서원과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4. 삽교면 역리 이주하(李柱夏)가 예산이 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에 대해 ○○○ 등 지방좌익이 삽교분주소에 신고하여 1950. 9. 26.경 삽교분주소 앞 양조장 창고에 수감되어 있다가 삽교면 두리 공동묘지에서 희생되었다. 당시 삽교분주소 앞 양조장 창고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 12명이 삽교면 두리 공동묘지와 신가리 야산(꽃산)에서 각각 6명씩 희생되었다. 또 신가리 야산(일명 꽃산)에서는 몇 차례에 걸친 희생이 있었으며 36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


5. 한국전쟁 이전 박원규(朴元圭)가 남로당 지하조직 은신처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1950. 9. 16.경 삽교면 가리에서 박원규가 지방좌익에게 체포되어 끌려가서 희생되어 신암면 천변에서 그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1950. 9. 27.경 그의 형제라는 이유로 박은규(朴殷圭), 박명규(朴明圭)가 끌려가서 삽교면 두리 현재 삽교중학교 앞에서 지방좌익들에게 희생되었다. 그리고 미신청희생자 조명환(曺明煥)이 함께 희생되었다.


6. 예산군이 수복된 줄 알고 신암면 예림리에서 이○○ 등 지방좌익을 구타했던 사건에 서용길(徐龍吉), 유분석(劉分石), 강한구(康漢球), 황도연(黃道然)이 관련성이 있다고 하여, 1950. 9. 27.경 신암분주소원과 지방좌익들에게 신암면 예림리에서 체포되어 신암면 종경리 야산에서 희생되었다. 그리고 미신청희생자 강한순(康漢舜), 강병철(康炳哲)을 포함해서 모두 6명이 함께 희생되었다.


7. 진실규명대상자 김성식(金聖植), 김흥식(金興植), 김임선(金任善), 김헌식(金憲植), 김영민(金永敏) 등 5명은 대술면 장복리 김승식의 집에 모여 ‘보국대’ 등을 다녀와서 안부를 묻던 중 이장 등의 이유로 지방좌익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리고 진실규명대상자 조병옥(趙炳玉), 조병성(趙炳星), 박일봉(朴一奉) 등 3명은 태극기를 그렸던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들 8명은 1950. 9. 28. 대술면 산정리 신작로 옆 소나무 아래에서 ○○○ 등 지방좌익에게 미신청희생자 김성진(金聖鎭)), 김간나(金간나), 이청만(李靑萬), 박상돈(朴相敦), 김완식(金完植), 김인식(金仁植), 김종식(金宗植) 등 7명과 함께 희생되었다.


8. 지방좌익들이 신양면 신양리에서 의용소방대원 및 방위군 등 우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편쾌남을 잡으려다가 잡지 못하여 1950. 9. 28. 그의 양모 박부전(朴富田)이 대신 신양면 신양리 자택에서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


9. 한국전쟁 중 예산지역에서 박정복이 적대세력에 의해 강제연행되었다고 주장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문헌자료 검토와 당시 예산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하였으나, 박정복이 좌익에게 의용군으로 끌려간 사실 및 이후 그의 행방뿐만 아니라 그가 삽교면 두리에 거주했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