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강화지역 적대세력 사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3-02
조회수
42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강화지역 적대세력 사건.pdf [6601190 byte]

 


 


1. 1950. 7. 중순에 한남수 자택에서 진실규명대상자 한진수(韓晋洙, 마-9995)가 지방좌익에 의해 구타당한 후 그 후유증으로 1950. 7. 25. 강화군 하점면 이강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사건 생존자의 진술과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2. 1950. 9. 20. 강화군 불은면 삼동암리 대청교에서 진실규명대상자 김영백(金永伯, 마-3368)이 내무서원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참고인 진술과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3. 1950. 9. 29일~30일 밤에서 새벽 사이에 양사면 인화리 중외산 중턱에서 진실규명대상자 고상곽(高相郭), 고만영(高萬泳), 이승국(李承國), 윤희균(尹希均), 윤경균(尹庚均), 윤일균(尹一均), 김형태(金亨泰), 김용태(金龍泰), 황용운(黃龍沄), 이범주(李凡柱), 이경용(李暻容), 김영복(金永福), 김영수(金永秀), 김윤태(金允泰), 김성재(金成宰), 김기재(金基宰), 곽성근(郭城槿), 곽승봉(郭承鳳), 곽산옥(郭山玉), 곽희봉(郭喜鳳), 곽성옥(郭城鋈), 이준식(李俊植), 김유중(金裕重), 김유창(金裕昌), 김유년(金裕年), 나홍대(羅鴻大), 종창순(鍾昌順), 유두식(兪斗植), 박종식(朴鐘植), 남궁택(南宮垞), 김대식(金大植), 염선창(廉先昌), 윤춘태(尹春台), 김양묵(金陽黙), 김동식(金東植), 민상희(閔相熙), 김종원(金鐘源), 장동근(張東根) 등 38명(마-1467, 마-3835, 마-5722)과 미신청희생자 이갑상, 서정필, 김도영, 서호창, 전영극 등 5명이 인민군과 내무서원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참고인과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4. 1950. 10월 초 개성 송악산(개풍군 영남면) 중턱에서 미신청희생자 송인근, 장명순, 황도문 등 3명이 인민군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사건 생존자의 진술과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또한 진실규명대상자 신도균(申道均), 신복언(申福彦), 신용균(申龍均), 전표환(全杓煥), 신경균(申慶均), 신양수(申良秀), 정규옥(丁奎鈺), 윤병길(尹炳吉), 나구석(羅龜錫), 정산진(丁山鎭), 김용운(金用云), 김주현(金柱鉉), 남궁열(南宮悅) 등 13명(마-1467, 마-6070, 마-10082)과 미신청희생자 고주성, 김용진, 이동환, 이준병, 남궁유 등 5명이 사건 생존자와 문헌자료를 통해 인민군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5. 1950. 6. 27. 진실규명대상자 홍재룡(洪在龍, 마-7996)이 지방좌익에 의해 자택에서 연행되어 강화내무서에 감금되었다가 1950. 7. 10.경 서울로 이송되었다는 사실이 참고인․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었다.



6. 1950. 9. 25.경 진실규명대상자 김재봉(金在鳳, 마-6476)이 내무서원에 의해 김재황의 집(교동 내무서)에 감금되었다가 교동면 인사리 포구를 통해 연백 쪽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이 신청인과 참고인을 통해 확인되었다. 



7. 진실규명대상자 중 한진수 등 40명의 희생사실이 확인되었고, 김주현 등 13명은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미신청희생자의 경우는 이갑상 등 8명의 희생사실이 확인되었고, 고주성 등 5명은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48명의 희생사실이 확인되었고, 18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8. 가해주체는 인민군, 내무서원, 지방좌익 등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희생자 대부분은 일제시대 경력과 해방 이후 사회활동 및 직업에 의해 ‘반동분자’로 분류되었거나 벽보․삐라를 만들어 배포하고, 태극기를 자택 혹은 동네에 게양하였다는 이유로 희생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