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포항 흥안리 미군폭격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9-03-02
조회수
148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포항 흥안리 미군폭격사건.pdf [5427509 byte]

 

1. 포항 흥안리 주민과 인근의 피난민들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 8. 16. 흥안리마을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집단희생되었다. 이 폭격은 미 5공군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제7함대 사령관 스트러블(Athur D. Struble)이 지휘하는 제77항모기동부대(CTF-77)의 항공모함 필리핀 씨(Philippine Sea CV47)호의 제11항모 비행전대(CVG-11) 항공기들이 이 지역 폭격의 주체다. 오후 3시경부터 항공기들은 네이팜탄 등 폭탄 10여 기를 흥안리마을에 투하하고 마을과 인근의 피난민들에 대하여 약 20분간 기총소사하였다.


2. 이 사건의 희생자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최순기(崔順起), 강외근(姜外根), 오수정(吳水靜), 오규봉(吳圭鳳), 오규대(吳圭大), 이상기(李相基), 박태춘(朴泰春), 박재춘(朴再春), 박남옥(朴南玉), 김정순(金貞順), 임두리(林斗伊), 정남이(鄭南伊), 김규직(金圭直), 김재학(金在鶴), 김복형(金福炯), 박월례, 김군식(金君植), 김규환(金圭煥) 등 18명이다. 실종자 및 피난민으로 진실화해위원회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희생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희생자는 1백여 명까지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3. ‘흥안리 미군폭격사건’은 미 해군이 포항 인근에서 인민군에게 포위된 국군 3사단의 철수작전을 엄호하기 위한 예방폭격작전의 일환으로 발생하였다. 미군은, 국군의 해상철수 중 인민군의 집중공격을 방지하려면, 가까운 거리 내의 인민군 복병과 장비를 사전 폭격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 작전을 실행했다.


4. 미 해군은 폭격 목표지점인 흥안리 일대에 민간인 거주마을과 피난민 대열이 있음을 정찰을 통해 인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실행된 폭격양상을 보면 작전범위 내에 인민군의 존재를 확인하여 폭격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피난민 속에 인민군의 복병이 섞여 있거나 피난민들의 운반수단이 군사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민간인 대열을 적군 내지 적의 장비로 간주하여 직접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사전경고와 선별을 통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시킬 조치를 강구하지 않고, 군사적 목표물과 민간인을 구별하지도 않은 채 기습 폭격을 감행하여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5. 국군의 해상철수를 위해 예방폭격이 군사적으로 필요했음을 인정할지라도, 미군이 민간인 희생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흥안리를 폭격하고 그 인근의 피난민에게 기총소사한 것은 국제인도법, 전쟁법의 민간인 면제규범에 의한 민간인 구별의 원칙, 사전경고의 원칙, 비례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