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괴산·청원(북일,북이) 국민보도연맹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9-03-02
조회수
26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2009 상반기 조사보고서(3권)-2부(2.괴산)(1).pdf [2109342 byte]

1.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초순까지 괴산․청원(북일, 북이)지역 보도연맹원을 포함한 예비검속자들이 괴산ㆍ청주경찰서 경찰과 헌병대, CIC에 의해 경찰서와 각 지서 등에 소집ㆍ구금되었다가, 1950년 7월 초순경 충북 청원군 북이면 옥수리 ‘옥녀봉’과 괴산군 일대에서 사살되었다.

 

2. 조사결과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모두 170명이다. 신청인 중 ‘확인’된 사람은 최대식(崔大植, 다-329호) 등 163명이다. 미신청인 중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김광식(金光植) 등 7명이다.

 

3. 희생자들은 괴산․청원(북일, 북이)지역의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이다. 신청인들과 참고인들의 진술과 자료에 의하면 일부 희생자의 좌익활동 경력은 확인되었으나 상당수는 좌익활동 경력이 전무하고 좌익사상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대부분이 20~30대 남성으로 농업 종사자들이었다.

 

4. 희생자들은 1950년 6월 말부터 1950년 7월 초순까지 주로 괴산․청주경찰서 소속 경찰들에게 소집․구금되었다. 그 후, 1950년 7월 초순경 괴산․청주경찰서 소속 경찰과 국군 소속 헌병대, CIC 군인들에게 사살되었다. 이러한 처형을 부당하게 여긴 일부 경찰의 적극적인 구제활동으로 상당수의 예비검속자들이 학살을 모면할 수 있었다.

 

5. 사건 당시가 비록 전시의 혼란한 상황이라고 하더라고, 군경이 적법한 절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던 평범한 민간인을 소집, 구금하여 집단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