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충남서부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9-03-02
조회수
46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2009 상반기 조사보고서(3권)-2부(3.충남).pdf [2723629 byte]

1.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14일 사이에 ‘충남 서부지역’ 일원에서 보도연맹원을 비롯한 요시찰인 수백 명이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살해되었다. 희생자 중 상당수는 좌익사상과는 무관하게 좌익단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거나,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모르고 가입한 농민들로 주로 20~40대의 청장년층이었다. 

 

2. 조사결과 진실규명대상자 중 희생사실이 확인된 희생자는 명창근(明昌根, 다-741호) 등 36명이며, 희생자로 추정되는 자는 백충흠(白忠欽, 다-6374호) 1명이다. 또한, 진실규명을 신청하지는 않았으나 조사과정에서 희생자로 확인된 자는 이관세(李冠世) 등 32명이며, 희생자로 추정되는 자는 이종국(李鍾國) 등 5명이다.

 

3.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주로 경찰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충남 서부지역에 상시 주둔한 군부대나 CIC파견대는 없었으며, 경찰이 대부분의 치안을 담당했고 소방대 등 우익단체가 보조했다. 1950년 6월 25일 치안국장 명의로 전국 각 시․도 경찰국장에게 내려진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에 의해 충남 서부지역에서도 일제히 예비검속이 시작되었다.

 

4. 그 결과 지역별로 보도연맹원을 비롯한 요시찰인 수백 명이 불법구금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대전형무소로 이송되었고 또 다른 일부는 경찰의 후퇴 시에 서둘러 총살되었다. 이 사건의 희생장소는 서산 성연면의 메지골, 당진의 한진포구(목캥이), 태안의 백화산(사기실재), 홍성의 용봉산과 이동부락 뒷산(폐광), 보령의 이어니재, 부여의 백마강(구드레나루터 부근)으로 확인되었다.

 

5. 이 사건의 가해책임은 일차적으로는 희생자들을 예비검속하고 사살한 충남 서부지역의 각 경찰서(지서)장 및 소속 경찰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경찰조직이 상명하복의 특수조직이라는 것과 사건 당시가 전시(戰時)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더 큰 책임은 그 명령체계의 상층부에서 집행을 결정하고 하달한 자들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해의 주된 지휘책임은 경찰명령체계의 정점에 있는 치안국장을 비롯한 내무부장관과 계엄사령관, 국방장관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이승만 정부에 귀속된다. 

 

6. 진실화해위원회는 본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국가의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공공기록물 등재 및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군인․경찰․공무원 등에 대한 전시인권침해사례교육 및 초․중․고생 등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강화, 지역사회 화합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 등을 권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