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전남지역(담양ㆍ장성ㆍ화순ㆍ영광) 11사단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9-07-28
조회수
229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2009 상반기 조사보고서(4권)-2부(10.전남)(1).pdf [4720019 byte]


1. 전계성 외 290명의 전라남도 담양․장성․화순․영광(함평 포함)지역 주민은 1950년 10월부터 1951년 3월 사이에 수복 및 빨치산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 제11사단 20연대와 9연대에 의해 ‘빨치산’ 혹은 ‘부역혐의자’ 등으로 몰려 사살되거나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2. ‘9․28수복’ 이후 퇴로가 끊긴 인민군 및 지방좌익은 남부지방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후방교란작전을 펼쳤는데, 특히 담양에서는 추월산을 중심으로, 장성에서는 수련산과 태청산, 화순에서는 백아산과 모후산 그리고 화학산, 영광과 함평에서는 구수산과 불갑산을 중심으로 다수의 빨치산이 집중되어 있었다.


 


3. 전남지역의 수복 및 토벌작전은 1950년 10월 10일 광주에 진주한 국군 제11사단 20연대에 의해 전개되었는데, 그중 1대대는 담양에 주둔하며 담양과 전북 순창 등지에서, 2대대는 장성에 진주하여 장성을 비롯한 영광과 함평 그리고 전북 순창과 고창 등지에서, 3대대는 같은 기간 함평과 영광을 수복하고 화순에 진주하여 인근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또한 9연대는 1951년 3월 중순 화순에서 20연대 1․3대대와 합동작전을 펼쳤다.


 


4. 당시 국군 제11사단은 민간인과 빨치산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인과 빨치산을 분리하고 빨치산을 고립시키기 위해 산간마을을 소각하고 주민을 면소재지나 수복지역으로 소개시키는 작전을 펼쳤는데 그 과정에서 빨치산에게 협력했다고 의심되는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하여 작전 상의 위험을 제거하고 빨치산토벌의 전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하였고, 이로 인해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5.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희생자 수는 291명이다. 이 중 신청인이 진실규명을 신청한 희생자는 모두 172명인데 지역별로 담양에서 조정수 등 50명, 장성에서 전계성 등 38명, 화순에서 강삼수 등 61명, 영광․함평에서 유연우 등 23명이다. 또 추가로 확인된 미신청희생자는 총 119명인데 담양이 고재하 등 44명, 장성이 김종식 등 29명, 화순이 강동원 등 42명, 영광이 문길선 등 4명이다.


 


6.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1․2․3대대와 9연대 2대대 군인으로, 가해부대의 지휘계통은 국군 제11사단장, 제20연대장과 제9연대장, 그리고 각 대대장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국군 제11사단은 초기 미군 제9군단에 배속되어 있다가 1950년 10월 30일에서 11월 7일 사이에 국군 제3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7. 이 사건은 비록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었던 전시 수복과정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관인 국군이 적법절차 없이 비무장․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