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경남 통영ㆍ거제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희생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9-09-24
조회수
243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5권_경남 통영 거제 국민보도연맹등 민간인 희생 사건.pdf [1668737 byte]

1. 서철암 외 172명 이상의 통영․거제지역 주민들이 1947년 8월부터 1950년 9월까지 빨치산 협력자, 국민보도연맹원, 부역혐의자(좌익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국군16연대, 통영경찰서, 거제경찰서, 헌병대, CIC, 해군G-2, HID에 의해 통영 광도면 무지기고개, 통영 한산도 앞바다, 거제 가조도 앞바다, 거제 지심도 앞바다 등에서 집단희생당했다.

2. 한국전쟁 전 김숙민 외 2명이 1947년 8월 거제 연초면 다공리에서 보리공출 항의 시위에 참가했다가 사살당했으며, 연초면, 하청면, 장승포읍, 일운면, 동부면 주민들이 1949년 거제에 진주한 국군 제16연대 등에 의해 빨치산 혐의 또는 빨치산에게 협조한 혐의로 고현동 독봉산, 하청중학교 앞산, 장승포 신사터, 일운면 지세포리 야산, 동부면 서당골에서 총살당했다.

3. 김정길 등 110여 명의 통영지역 국민보도연맹원이 1950년 7월 중순부터 통영경찰서 유치장, 통영극장, 봉래극장에 연행되었다가 1950년 7월 26일경 광도면 안정리 무지기고개에서 총살당했으며, 서철암 등 260여 명의 거제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은 1950년 7월 15일경부터 7월 24일까지 거제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일부는 석방되고 나머지는 1950년 7월 26일부터 지심도 앞바다에서 수장당했다.

4. 안승관 등 통영에서 인민군 점령기(1일~1개월) 동안 인민군에게 협력했을 것으로 의심받은 주민들이 1950년 8월 20일부터 통영경찰서 또는 헌병대로 연행되었다. 이들은 통영경찰서 유치장 또는 통영 항남동 헌병대 멸치창고에 갇혀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문을 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1950년 9월 19일경 통영 명정동 절골 뒷산에서 총살당했으며 일부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수장당했다. 이외에도 국군 수복 후 통영 광도면, 도산면, 용남면에서 인민군에게 부역한 혐의를 받은 주민들이 국군, 경찰관, 치안대 등에게 살해당했다.

5. 임금동 등 거제에서 국민보도연맹원 등 좌익혐의를 받던 주민들이 1950년 8월 19일경부터 각 지서로 연행되었다가 거제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사등면의 주민들은 1950년 8월 23일경 면을 관할하던 성포지서로 연행되었다가 8월 25일경 사등면 가조도 앞바다에서 수장당했다. 거제경찰서로 연행되었던 사등면 외 주민들은 1950년 8월 19일경부터 8월 30일까지 지심도 앞바다에서 수장당했다.

6. 조사결과, 이 사건 신청인 중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김정길(金禎吉, 다-109)등 96명이며, 미신청사건 중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박동조(朴東祚)등 40명이다. 이 사건 신청인 중 희생추정자는 윤병철(다-7296) 등 1명이며, 미신청사건 중 희생추정자는 박수익 등 36명이다. 희생자의 신원이 확인 또는 추정된 희생자는 173명이나 이는 신청사건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통영과 거제지역에서 각각 800~900명이 희생되었다는 자료와 진술을 감안한다면 희생자는 173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7. 희생자 중 일부는 전쟁 발생 전부터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의 정치활동과 관련되었으며, 이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음이 확인되었다. 국군이 통영지역을 수복한 후의 희생자들은 주로 인민군에게 협조했다는 의심을 받은 주민들이었으며, 같은 시기 거제의 희생자들은 주로 인민군에게 협조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은 주민들이었다. 일부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희생되기도 하였다.

8. 조사결과, 가해 주체는 통영․거제 경찰과 국군 제16연대, CIC, 해군G-2, HID 국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통영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은 통영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게 살해당했으며,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은 주민들은 경찰관, 헌병대 군인과 문관들에게 살해당했다. 거제에서 전쟁 전 빨치산 협조 혐의 등을 받은 주민들이 거제경찰서 소속 경찰관과 국군 제16연대에게 살해당했으며,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좌익활동 혐의자들은 1950년 7월~9월 CIC통영파견대장의 명령에 의해 거제경찰서, CIC, 해군 G-2, HID 소속 군인 등에게 살해당했음이 확인되었다.

9. 전시 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군․경찰의 지휘․명령에 의해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 또는 협조했을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재판절차없이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며 불법적 학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