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나주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상해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9-12-03
조회수
146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2권_나주지역 적대세력에의한 희생 및 상해사건.pdf [2084445 byte]

1.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과 문헌자료를 통해 1948. 11월~1951. 5월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남평면, 다도면, 다시면, 문평면, 왕곡면 등 6개 면에서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진실규명대상자 108명과 조사과정에서 인지한 미신청자 3명 등 총 111명이 희생당하였음을 확인 또는 추정하였다. 또 진실규명대상자 2명과 미신청자 3명 등 총 5명이 상해당하였음을 확인하였다.

2. 사건 발생 시기별로 보면 한국전쟁 발발 전인 1948. 11월~1949. 9월에 문평면, 다도면, 남평면에서 5건이 발생하여 11명이 희생 및 상해를 당했고, 인민군 점령기인 1950. 7월 말~1950. 9월 말에는 다도면, 왕곡면에서 3건이 발생하여 4명이 희생당했으며, 인민군 퇴각기인 1950. 9월 말~1950. 10월 초에는 공산면, 왕곡면에서 2건이 발생하여 2명이 희생당했다. 인민군 퇴각 이후인 1950. 10월 초~1951. 5월에는 공산면, 다도면, 문평면에서 전체 신청 사건의 68%인 21건이 발생하여 전체 희생자의 86%인 99명이 희생당하였다.

3. 사건 발생 장소를 면단위로 살펴보면, 다도면에서 22건, 문평면에서 3건, 공산면․왕곡면에서 각 2건, 남평면․다시면에서 각 1건씩 발생하였다. 특히 다도면에서 전체 사건의 70%인 22건이 발생하여 전체 희생자 수의 90%인 104명이 희생 또는 상해를 당하는 등 사건이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4. 즉 시기별로는 인민군 퇴각 이후인 1950. 10월 초~1951. 5월, 면별로는 다도면에서 희생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하였다. 이는 다도면이 산악지역이고 주위의 영암․장흥․화순 등을 잇는 요충지여서 군경 토벌작전에 쫓긴 나주지역 빨치산들이 몰려들어 나주지역에서 가장 늦게 수복된 지역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시기 미수복지역인 다도면에 남아 있는 군인, 경찰, 공직자, 우익단체원 등의 ‘우익 인사’나 그 가족이 빨치산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였다.

5. 나주지역에서 발생한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의 가해주체는 지방좌익과 빨치산이다. 한국전쟁 발발 전 1948. 11월~1949. 9월 발생한 희생사건의 가해주체는 해방 이후 나주지역에서 활동하던 (구)빨치산이고, 1950. 7월 말~9월 말 인민군 점령기에 발생한 희생사건의 가해주체는 분주소원, 자위대원 등으로 활동하던 지방좌익이다. 1950. 9. 28. 서울 수복 이후 1951. 5월까지 주로 다도면에서 발생한 사건의 가해주체는 인민군 점령기 때 각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빨치산 토벌작전이 시작되자 인근 산악지대로 들어가 유격대 활동을 하던 지방좌익과 인민군 잔병, 당 요원들로 구성된 무장유격대, 즉 빨치산이다.

6. 희생자 및 상해자로 확인 또는 추정된 116명 중 남성은 68명(59%), 여성은 48명(41%)으로 여성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연령이 확인된 희생자는 99명으로 그 중 10세 미만이 14명(14%), 10~19세가 21명(21%), 20~29세가 16명(16%), 30~39세가 8명(8%), 40~49세가 18명(18%), 50~59세가 13명(13%), 60세 이상은 9명(9%)이다. 이상의 통계에서 한국전쟁 전후 나주지역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다양한 연령층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희생자들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지방좌익이나 빨치산에 의해 희생된 이들은 주로 면장, 이장, 공무원, 군인, 경찰, 의용경찰, 대한청년단원, 우익단체원 등 ‘우익인사’나 그 가족이다. 또 빨치산 토벌작전이 벌어지면서 군인이나 경찰 정보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군․경에 협조한 이들이나 그 가족, 빨치산에 비협조적인 이들이나 그 가족이 희생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