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보성ㆍ고흥지역 여순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9-12-04
조회수
41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6권_보성 고흥 지역 여순 사건.pdf [3128766 byte]

1. 정옥출(鄭玉出, 직다-668) 등 88명은 여순사건 직후인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3월까지 보성군․고흥군 일대에서 보성경찰서․고흥경찰서 및 제8관구 경찰청 소속 경찰, 그리고 국군 제4연대(이후 20연대로 재편)․제15연대 소속 부대원에게 불법적으로 살해되었으며, 이만수 등 16명은 같은 기간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보성경찰서․고흥경찰서 소속 경찰과 제8관구경찰청(이후 전남경찰국) 소속 경찰토벌대는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초까지 사찰계를 중심으로 관내 반군 토벌 및 반군 협력자 색출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경찰서나 관내지서로 연행하여 고문 및 취조한 뒤, 보성군 득량면지서 인근, 고흥읍 공동묘지 등지에서 불법적으로 사살했다. 

3. 국군 제4연대(이후 20연대)는 여순사건 이후 1950년 초까지 토벌작전을 전개하며 노동면 명봉리 야산 등지에서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살했다. 국군 제15연대 부대원들은 1948년 11월부터 1950년 3월경까지 토벌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고문하거나 고흥군 동강면 너릿재 등지에서 사살했다.

4. 조사 결과, 진실규명대상자 중 희생사실이 확인된 희생자는 보성지역 정옥출(鄭玉出, 직다-668) 등 41명, 고흥지역 유춘재(兪春在, 직다-334) 등 40명으로 총 81명이다. 또한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으나 조사과정에서 희생자로 확인된 자는 정영국(鄭永國) 등 7명이며, 희생자로 추정되는 자는 이만수 등 16명이다.

5. 본 사건 희생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전체 88명 가운데 20대와 30대가 65명으로 74%를 차지하였다. 성별 분포를 보면, 남자가 80명으로 희생자의 91%를 차지하여, 이는 젊은 남성이 주로 희생되었음을 보여준다.

6. 본 사건의 가해 주체는 보성경찰서․고흥경찰서 경찰, 제8관구경찰청(전남경찰국) 경찰토벌대, 그리고 국군 제4(20)연대․제15연대로 확인되었다. 본 사건 당시 경찰의 지휘명령 계통은 계엄사령관․제8관구경찰청(전남경찰국) → 보성․고흥경찰서장 → 관내 각 지서로 이어졌다. 군의 지휘명령 계통은 반군토벌전투사령부․호남방면전투사령관 → 남지구전투사령관 → 제4(20)연대장․제15연대장→ 예하 각 대대로 이어졌다. 본 사건은 현지 토벌작전 지휘관의 명령 아래 발생했지만, 최종적인 감독 책임은 국방부, 그리고 이승만 정부에 귀속된다.

7.  본 사건에서 군경 당국은 사건 관련자를 체포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불법적인 연행, 고문, 자의적인 분류에 따른 살해 등 여러 형태의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군경 당국은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인을 ‘즉결처분’하였다. 이에 많은 민간인들은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만으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당했으며, 이는 ‘즉결처분’이 사실상 학살이었음을 보여준다.

8.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하여 보성․고흥지역 여순사건과 관련하여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건 관련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할 것과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및 위령사업 지원 등의 조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본 사건의 진실규명 내용을 관련 역사기록에 반영하고, 평화인권교육을 강화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