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충청지역 미군폭격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10-12-27
조회수
28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6권-6-충청지역 미군폭격 사건.pdf [8060865 byte]
 

1. 진실규명

가.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10일, 충남 서천군 판교면 판교초등학교(현 서천사랑병원) 뒤편의 임시장터에서 장을 보러 온 100여 명의 민간인이 미군 비행기의 기총사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진실규명대상자 중 15명의 희생사실을 규명하였다.

나. 미군문서에 의하면 1950년 9월 10일 오전 11:30분경 미 공군의 F-51 2대가 임무를 완수하고 귀대하는 도중에 장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을 향해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문서상 나타난 가해부대는 제18전폭단소속 제67전폭대대(18th Fighter Bomber Group, 67th Fighter Bomber Squadron)이다.

다. 당시 이들은 미 극동공군사령부(Far East Air Forces, FEAF)의 지휘 하에 있었으나 실제로는 미 극동군사령부(FEC, or FECOM)와 더 나아가 워싱턴 당국의 폭격정책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 당시 이곳에는 5일 간격으로 시장이 형성돼 판교지역은 물론이고 인근의 부여, 보령지역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은 인민군 점령지였으나 인민군의 상주(常住)부대나 중요 군사시설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선(戰線)과 멀리 떨어진 후방지역이었다.

마. 이러한 폭격이 설사 마을에 적의 존재가 의심되어 공격한 것이라 해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사전보호조치나 민간시설과 군사시설을 구별하려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민간인 활동지역(시장)을 공격한 것은 비례의 원칙(the Principle of Proportionality)을 넘어서는 과도한 조치로 간주된다.

바. 진실화해위원회는 본 사건의 진실이 규명됨에 따라, 국가에 대하여 미국과의 협상, 국가 사과와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부상 피해자에 대한 의료 지원, 제적부․가족관계등록부 등의 정정, 역사기록의 수정 및 등재 등의 사항을 권고하였다.


2. 진실규명불능

가. 진실화해위원회는 홍성 광천․예산읍․대전 봉곡동과 사기막골․대전역․아산 둔포․옥천군 청산면 노루목재․청원군 현도면 하석리 신청사건 11건을 조사한 결과, 진실규명대상자를 포함하여 27명이 한국전쟁 당시에 미 공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사실은 확인하였다. 다만, 사건 관련 기록 - 미군폭격기록, 작전지침, 교전수칙 등 - 을 충분히 입수 분석하지 못해 미군폭격의 불법성 여부를 규명하지 못하여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하였다.

나. 일부 불능 사건의 경우, 당시 미국 및 한국 정부가 피난민 보호와 소개 조치를 철저하게 시행하지 못한 점, 폭격 시 민간인 거주지에 대한 숙지와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 적군과 민간인,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식별하는 사전 조치를 소홀히 한 점 등이 인정된다.

다. 이 지역의 폭격문서에 나타난 폭격부대는 제8전폭비행단 소속 제35전폭대대(8th Fighter Bomber Group, 35th Fighter Bomber Squadron), 제48전폭단 소속 제8전폭대대(48th Fighter Bomber Group, 8th Fighter Bomber Squadron), 극동공군 폭격기사령부 소속 제 92폭격전단(FEAF Bomber Command, 92d Bombardment Group) 등이다.

라. 진실화해위원회는 본 사건에서 불법성 여부는 규명하지 못하였으나, 전쟁 피해에 따른 사망 사실이 인정된 만큼 국가에 대하여 다음 사항을 권고하였다.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위령사업, 전시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 인권의식 제고를 위한 국제인도법 교육, 향후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미국이나 관련 국가가 생산한 관련 자료 확보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