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단양지역 미군관련 희생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10-12-27
조회수
67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6권-7-단양지역 미군관련 희생 사건.pdf [15251381 byte]
 

1. 임종우, 김주경을 포함한 민간인 최소 106명은 한국전쟁기인 1951년 1월 중순경(12일~19일) 충청북도 단양군 노동리․마조리 등 단양지역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초토화 방식으로 행해진 미군의 공격행위(폭격․포격․총격․소각)로 사망하였다.

2. 이 사건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수세 국면에 놓인 상태에서 북한군이 강원도를 경유하여 충북과 경북 내륙의 소백산맥일대 산악지형으로 침투하던 1951년 1월 발생하였다. 이때는 후방교란 작전을 구사하려는 북한군을 유엔군이 막아야 하는 군사적 필요가 있었던 시점이었고, 그래서 북한군 이동경로에 대한 미 공군 및 육군의 폭격→포․총격→마을 소각의 단계적 초토화 방식으로 미군의 작전이 전개되었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했던 노동리․마조리 등 단양지역은 대표적 작전지역이었다.

3. 조사결과 이 사건으로 희생된 사실이 확인 또는 추정된 사람은 106명이다. 이 중 희생사실이 확인된 사람이 58명, 희생이 추정되는 사람이 48명이다.

4. 이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모두 노동리․마조리 등 단양지역에 거주하던 주민으로 남성은 45명, 여성은 21명(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광산탄약고 희생자 40여 명 제외)이었다. 온 가족들이 피난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던 마을에서 공격을 당하였기 때문에 희생자는 남녀노소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전시특별보호대상인 노약자와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다.

5. 이 사건은 한국전쟁 시 단양지역의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침투한 북한군을 소탕하기 위해 미 육군과 미 공군이 합동작전을 전개, 단양군 노동리․마조리 등 단양지역을 초토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즉 먼저 근접항공지원에 의한 미 공군의 지역폭격이 있은 후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미 육군이 마을에 진격하면서 포와 총으로 공격하였으며, 이후 마을에 도착해서는 적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집을 모두 소각하는 식으로 체계적으로 전개되었다. 마을주민의 희생원인이 폭격, 포격, 총격, 소각으로 다양한 것은 바로 이런 초토화의 과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6. 근접항공지원 폭격(로케트 포격과 기총사격 포함)은 미 제5공군 제27 전투폭격단(WU 27th Fighter Escort Group), GASMASK BAKER 대대, ADMIRATION GEORGE 대대 등의 소속 전폭기 F-51, F-80, F-84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어진 미 육군의 작전은 제10군단(Ⅹ Corps) 제7사단(7th Infantry Division) 제17연대(17th Infantry Regiment), 제31연대(31st Infantry Regiment)와 제187공수연대전투팀(187th Airborne Regimental Combat Team)의 지원과 함께 제10군단 제7사단 소속 제32연대(32d Infantry Regiment)가 주로 담당하였으며 탱크를 앞세워 마을에 진격하면서 포격과 총격을 가하고 마을을 소각하였다.

7. 이 사건이 발생한 1951년 1월 당시는 야간이동과 게릴라 전술을 쓰는 북한군의 소탕을 위해서 북한군의 이동경로 상의 민간인 마을에 대해 초토화작전을 실행할 군사적 필요(military necessity)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민간인 사상자 수나 작전의 절차와 수단의 적절성 면에서 ‘비례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에 위반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