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예천진평리 미군폭격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10-12-27
조회수
179
결정유형
진실규명불능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8권-10-예천 진평리 미군폭격 사건(불능).pdf [5453346 byte]
 

1. 이홍수를 포함한 민간인 최소 26명은 한국전쟁기인 1951년 1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 일대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2. 이 사건이 발생했던 1950년 12월~1951년 1월경에는 중국군의 참전으로 미군은 미8군이 서부전선을, 미 10군단이 동부전선을 각각 담당하였고, 1951년 1월경에는 미 10군단 담당지역인 충북-경북 계선의 소백산맥지대에 인민군이 깊이 침투하였다. 유엔군은 인민군이 소백산맥 침투 전술을 중국군이 또 다른 총공세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파악하였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였다. 유엔군 사령부는 지상군을 투입함과 동시에 공중 폭격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의 발생 지역인 진평리를 포함한 예천군 일대를 폭격하였다.

3. 조사결과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이홍수(李洪壽) 등 26명이다.

4. 이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진평리 주민이거나 벌방리에서 피난 온 어린이들로 사망자 중 절대 다수인 70%가 13세 이하의 어린이들이었다. 또한 사망자 중 23%는 20세 이상의 부녀자로 그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5. 이 사건은 한국전쟁 공산군 3차 공세시기(1951년 1~2월), 미군이 중동부전선의 후방에 침투한 인민군과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펼치면서,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서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에 이르는 지역을 폭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런 전술적 폭격 명령은 당시 구성된 전술항공통제체계 내에서 이루어졌다. 즉 미187공수연대전투대의 요청으로, 공중 정찰과 사건지역 지상군을 통해 정보를 수집ㆍ분석하고, 전술항공통제센터(Tactical Air Control Center)와 전술항공통제반(Tactical Air Control Party)의 폭격지시와 통제 하에, 미해군 또는 해병 F4U기와 AD기를 동원하여 폭격을 하였다.

6. 이 사건의 발생지역은 인민군이 침투한 소맥산맥 인근 미군의 대게릴라전 합동 수색작전지역으로, 인민군의 적정이 의심되었고, ‘흰 옷 입은 다수의 사람들’이 발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흰 옷 입은 다수의 사람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들이 민간인인지에 대한 충분한 확인 없이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여 마을을 소각하고 민간인 집단희생을 초래하였다고 보이나 국제법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진실규명불능으로 결정되었다.

7. 본 사건에서 불법성 여부는 규명하지 못하였으나, 전쟁 피해에 따른 사망사실이 인정된 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위령사업과 지원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제정하거나 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