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좌익재소자의 사망관련 인권침해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10-12-27
조회수
45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인권침해
첨부파일
10권-3-좌익재소자의 사망 관련 인권침해 사건.pdf [2345728 byte]
 

1. 정부는 1956.부터 좌익수형자들에 대해 사상전향을 강제하면서 1969. 7.24. 가석방심사규정을 개정하여 ‘비전향좌익수들에게는 전향 여부를 심사하고, 사상전향에 관한 성명서나 감상록을 제출’하게 하여 실질적으로 가석방을 어렵게 제도화하였다. 또한, 1969. 5. 13. ‘교정누진처우규정’을 제정하여 ‘전향을 하지 않는 좌익수는 행형상의 누진처우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각 교도소에서는 그 이전에도 비전향좌익수들에 대해 전향공작이 실시되어 왔으나, 특히 1973. 전향공작 전담반이 구성된 이후 1979.경까지 더욱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특히 전담반이 만들어진 초기에는 폭력재소자까지 동원하여 비전향좌익수에 대한 고문과 구타 등을 행사하면서 전향시키려 하였다. 당시 전향공작은 국가의 정책적 주요사업으로서 중앙정보부가 독려하고 성과를 관리하였으며, 각 교도소에서는 전향공작의 지침서를 직접 작성하여 활용하기도 하였다. 

2. 이러한 조건과 과정 속에서 좌익수형자들 가운데 자살자들이 발생하였다. 자살자 12명 중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인정되는 경우는 진실규명대상자 탁해섭(전주), 신춘복, 김규호(광주), 김대석(대구)의 4명이고, 나머지 고봉율, 윤종화, 김영호, 정영훈(대구) 박병일, 이용훈, 황필구(대전), 하야청(청주) 8명에 대해서는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였다.

병사자 53명 중 상당수의 비전향좌익수들은 고령의 나이에 장기간의 구금 및 운동부족, 교도소 내 열악한 환경 등으로 고혈압, 위장병 등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교도소에서 병사하였거나 병에 걸려 출소한 이후 가까운 시일 안에 사망한 경우이다. 이 중 사망전 현저하게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가 인정되는 경우는 권오금(전주), 변치수, 최한석(광주), 강동찬, 조용수(대전), 백갑기, 공인두, 이상률(청주보안감호소)의 8명이고, 나머지 병사자 중 즉 윤석만, 조인국, 김태성(전주), 정순정, 이양성, 현명원, 이동근, 장한영, 이선우(광주), 손순남, 하상혁, 황대연, 한태갑, 이연송, 김태원, 기세일, 박정래, 송순영, 노천도, 신창길, 최한무, 최종천(대구), 이희복, 임주홍, 김경섭, 김세균, 한현수, 배학수, 안병화, 권창수, 유재인,  최주백, 최재필, 박창술, 최익현(대전), 공재용, 김경익, 김용철, 김홍직, 안준호, 김규찬, 문갑수, 송순의, 이훈동, 최점수(청주보안감호소)에 대하여 인권침해의 개연성은 인정되나 구체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여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였다.

나머지 진실규명대상자 박윤영, 이영호, 박재복, 인장규(광주), 홍채, 김영태, 서치술, 조윤규, 권홍직(대구), 김성윤(대전)은 수형자 신분장을 찾을 수 없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는지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어서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대상자 여부조차 불명확하여 동인들에 대한 신청은 각하되었다.

3. 이 사건에 대해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실이 일부 규명되었으므로, 국가는 전향공작과정에서 발생한 가혹행위와 비인도적 처우 및 자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아 병을 악화시킨 점 등에 대해 진실규명대상자들 및 그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