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이윤희의 1920년대 흑우회 등의 항일독립운동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8-08-27
조회수
42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항일독립운동
첨부파일
이윤희의 1920년대 흑우회 등의 항일독립운동 사건.pdf [9762899 byte]
 

1. 이윤희의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가 방화로 멸실되었고, 각 논문이나 자료에 등장하는 이윤희가 몇 년생인지 어디 출생인지 명확하지 않아, 각 자료에 등장하는 이윤희와 신청인의 부친 이윤희가 동일인물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으나, 신청인의 증언을 토대로 출신학교인 진잠소학교 졸업생 명부를 통해 1902년 4월 20일생이며 대덕군 기성면 가수원리 출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같이 활동한 이강하와 소학교 동기임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이윤희는 국내와 일본에서 같이 활동한 이강하와 소학교 동기인 점, 대전을 중심으로 고향인 가수원리에서 농민운동을 한 점, 그 외 활동시기, 활동지역 등 신청인의 주장과 자료의 내용들이 일치하고 있다. 또 아나키즘 연구자 김명섭 교수가 주장하듯 한자이름이 같고, 에스페란토를 구사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동일인물이라고 판단된다. 


2. 이윤희의 활동을 국내와 일본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에서는 1922년 말과 1923년 초에 걸쳐 대전 및 고향인 대덕군 기성면 가수원리를 중심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했으며, 일본에서의 활동은 1920년대 각 아나키즘 단체를 중심으로 한 것과 1930년대 아나키즘노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20년대에는, 1921년 흑도회, 1923년 흑우회, 1928년 흑우연맹, 1928년 오사카에서 조선인신진회, 흑색선인사와 같은 각 아나키즘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흑우회 기관지인 "현사회"의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1930년대 들어서, 1932년 시바우라(芝浦)노동자자유연합을 조직하였고, 같은 해 전국노동조합자유연합회에서 서기로, 1933년 조선자유노동자조합 임시총회에서 문화부 간부로 선출되었다. 또 "자유연합신문"제52호 (1930.10.10)와 "特高月報"1932.10), "사회운동상황"4에 검거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1930년대에도 주도적으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고, 그에 관해서는 "근대일본사회운동사인물대사전"4권에 비교적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3. 일제강점기의 아나키즘 운동은 반일(反日)직접행동, 반 상애회(反相愛會, 친일단체)투쟁, 1920년 후반부터 두드러지는 노동운동, 1940년대 비밀결사에 이르기까지 항일운동의 일면을 꾸준히 보인다. 이윤희의 경우, 재일 한인 최초의 사상단체인 흑도회를 비롯 1933년 조선자유노동자조합이나 1934년 조선일반노동자조합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동 자체가 아나키즘 운동 과정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그동안 자료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업적을 평가받지 못한 이윤희의 항일독립운동은 진실규명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