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청주지역 신교식 등 8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납치)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8-12-08
조회수
212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적대세력관련
첨부파일
청주지역 신교식 등 8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및 강제연행(납치) 사건.pdf [5425178 byte]

 

 

1. 진실규명대상자 신교식(마-2820), 김기봉(마-6100), 박승원(마-7200), 김용희(마-7839), 김종렬(마-10062), 남건희(마-5602), 곽명종(마-6807), 곽재선(마-9262)의 희생 혹은 강제연행(납치) 사실을 문헌자료와 진술 자료를 통해 확인하였다.


2. 진실규명대상자 신교식, 김기봉, 박승원은 전국학생총연맹원, 대한청년단원, 대한노총위원장, 구장, 철도공무원 등의 경력으로 인해 체포되어 청주형무소에 감금되었다가 1950. 9. 24~9. 25. 청주형무소와 당산(동공원)에서 희생되었다. 청주형무소 사건의 발생장소는 청주형무소 구내와 형무소로부터 동북방향으로 약 350m 떨어진 당산(동공원) 등 2곳이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둔기에 의해 타살되거나 사살되었으며, 일부는 형무소 방화로 인해 소사되기도 하였다. 전체적인 희생규모는 234명 이상으로 판단된다. 본 사건과 관련하여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진실규명대상자 신교식(申敎植), 김기봉(金奇封), 박승원(朴勝遠)과 문헌자료 및 진술 자료에 의해 확인된 미신청피해자 심석구(沈錫九), 백상기(白相基), 오장식(吳章植), 곽경한(郭京漢), 황복성(黃福成), 김봉학(金鳳學), 심원대(沈元大) 등 총 10인이다.


3. 진실규명대상자 김용희, 김종렬은 대한청년단원, 구장, 경찰 등의 경력으로 인해 체포되어 청주내무서 유치장에 감금되었다가 1950. 9. 24~9. 25. 무심천(서문교 동남방향)에서 희생되었다. 청주내무서 사건의 발생장소는 청주내무서로부터 서쪽방향으로 약 300m 거리에 있는 무심천(서문교 동남방향)이다. 희생형태는 총살이며, 전체적인 희생규모는 120명 이상으로 판단된다. 본 사건과 관련하여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진실규명대상자 김용희(金容熙), 김종렬(金鐘烈)과 문헌자료 및 진술 자료에 의해 확인된 미신청피해자 김종건(金鍾建), 김연식(金連植), 남대희(南大熙) 등 총 5인이다.


4. 진실규명대상 사건은 아니지만 청주지역에서 인민군 퇴각시기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기타 사건으로, 청주시 정치보위부에 감금되었다가 1950. 9. 24~9. 25. 산성리 토굴에서 희생된 사건을 확인하였다. 정치보위부 사건의 발생장소는 청주시 정치보위부로부터 동쪽 방향에 있는 산성리 토굴(민영은 묘지 아래쪽)이며, 희생형태는 총살이다. 본 사건과 관련하여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문헌자료에 의해 확인된 전체적인 희생규모는 약 95명이다.


5. 진실규명대상자 남건희, 곽명종, 곽재선은 각각 목수, 농부, 공무원으로 남건희(19세)는 1950. 9. 초순, 곽명종(28세)은 1950. 8. 11., 곽재선(19세)은 1950. 8. 15.에 자택에서 인민군 및 내무서원에게 강제연행(납치)되었다. 󰡔6․25동란으로 인한 피납치자명부󰡕에는 인민군 점령시기 충북지역에서 총 7,517명, 청주지역에서 77명이 납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진실규명대상자 곽명종, 곽재선 등 2인은 명부에서 이름을 확인하였다. 남건희의 경우 명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2인 이상의 참고인이 남건희의 연행사실을 증언하였다.

 
6. 인민군 퇴각시기에 발생한 청주형무소․청주내무서 및 청주시정치보위부 희생사건의 가해주체를 문헌자료인 내무부의 「전범 제41호에 대한 사실조사 회보」(1952. 7. 20.) 문건을 통하여 정치보위부의 명령에 의해 인민군, 내무서원, 빨치산이 학살집행에 참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1950. 9. 당시 충북도정치보위부에 박○○, 청주시정치보위부에 김○○․김○○ 등이 활동을 하였다. 인민군은 2사단(사령관 최현)이 청주지역 전투에 참여하였고, 조선인민군 238부대가 청주를 점령하고 있었다. 노동당청주시당위원장에 신○○, 내무서장에 최○○․이○○ 등이 활동하였다. 희생자는 우익활동경력이나 직업 때문에 UN군 진주 후 우익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 및 활동할 소지가 있는 사람들이라 판단하여 체포․희생되었으며, 진실규명대상자 신교식, 김기봉, 박승원, 김용희, 김종렬이 이에 해당된다.


7. 인민군 점령시기 발생한 강제연행(납치)사건은 전쟁이 점차 장기화되고 전선이 확대되자 현실적으로 필요한 전투자원의 충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시동원령을 발동하여 ‘인민의용군조직위원회’를 조직, 대대적인 의용군 모집에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당의 지령을 받은 정치보위부, 인민군, 내무서원, 지방좌익 등이 동원되어 강제연행(납치)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미군 전쟁범죄조사단 문서 RG242 Item#22, 23, 71, 73, 145 기록에 의하면 충북의 각지에서 1950. 7~9. 중순까지 지역별로 8~9차에 걸쳐 의용군이 징집되었다. 특히 1950. 8. 초부터는 의용군 모집 제3단계로 ‘도망방지’ 요원들까지 두면서 강제징집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즉, 피해자는 북한의 점령지 점령정책의 일환인 의용군 징집 등의 군사동원 정책으로 인해 강제연행(납치) 되었으며, 진실규명대상자 남건희, 곽명종, 곽재선이 이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