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의령 미군폭격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09-03-02
조회수
75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의령 미군폭격사건.pdf [2875894 byte]

 

 

1. 정소남을 포함한 민간인 최소 69명은 한국전쟁기인 1950년 8월 10∼13일경과 8월 22일경에 경상남도 의령군의 화정면 상일리, 용덕면 정동리와 소상리, 의령읍 만천리 일대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2. 이 사건이 발생한 1950년 8월경에는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상황에서 인민군이 낙동강을 경계로 우회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유엔군은 우세한 공군력을 사용하여 인민군의 도하를 막고자 하였고 그 일환으로 미 제5공군은 의령지역의 담당 지상군인 미 육군 제24사단을 근접지원하기 위해 이 사건의 진실규명 신청지역이 위치한 낙동강 지류 남강 주변 일대를 폭격하였다.


3. 조사결과 이 사건으로 희생된 것이 확인되거나 추정되는 사람은 69명이다. 이 중 희생사실이 확인된 사람이 49명, 희생이 추정되는 사람이 20명이다. 신청사건에서 희생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정소남(鄭小男) 등 45명이며, 미신청 사건에서 희생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이점(李点) 등 4명이다. 미신청 사건에서 희생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김병권(金炳權) 등 20명이다. 또한 김이명(金二明), 조갑임, 박점새, 김만옥, 김경순 서남식 6명은 부상 생존자로 확인되었다. 


4. 이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모두 경상남도 의령지역 주민으로 남성은 35명, 여성은 34명이었다. 주민들이 피난을 가지 않은 마을에 폭격이 있었기 때문에 희생자의 연령층은 노인, 여성, 어린이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5. 이 사건은 한국전쟁 시 미군이 지연전과 근접항공지원작전을 펼치면서, 낙동강 도하를 준비하는 인민군의 은거지나 식량보급지 역할을 하는 강변 마을을 폭격하여 발생했다. 이런 전술적 폭격명령은 당시 구성된 전술항공통제체계 내에서 이루어졌다. 즉  공중정찰과 의령지역 지상군(미 제24사단 제19연대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ㆍ분석하고, 전술항공통제센터(Tactical Air Control Center)와 전술항공통제반(Tactical Air Control Party)의 폭격지시와 통제 하에,  제18폭격단(18th Fighter Bomber Group)의 제62폭격편대(62th Fighter Bomber Squadron) 등 여러 폭격편대 소속의 공군기(F-51, F-80)와 VMF(Marine Attack Squadron) 214, 323, 513 소속의 해병 함재기(F4U)가 동원되어 폭격을 하였다.


6. 이 사건의 진실규명 신청지역은 미군이 낙동강 동쪽으로 후퇴하여 인민군이 관할하던 지역이기는 했지만 폭격 당시에는 인민군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신청인들이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미군이 인민군의 위장전술을 알게 된 뒤 인민군이나 군장비의 은신 또는 은폐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폭격 목표물에 포함시켜야만 했던 전황을 감안하더라도 폭격에 무방비한 민간인 거주 지역에 경고, 소개 등의 조치나 민간인과 적을 구별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폭격한 것은 국제관습법적 지위를 가진 국제인도법은 물론이고 당시 미군교범에도 위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