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경남 합천 국민보도연맹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09-12-04
조회수
29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6권_합천 국민보도연맹 사건.pdf [6609342 byte]

 1. 강보옥(姜譜鋈, 다-48호) 외 46명의 합천지역 보도연맹원 등은 합천경찰서 및 지서 경찰들에 의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예비 검속되었다가 1950년 7월 20일부터 7월 31일 사이에 산청군 생비량면 화현리 방아재와 합천군 합천면 계림리 야산, 용주면 용주지서 뒷산, 봉산면 행정리․상현리․권빈리 등으로 이송된 후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되었다.

2. 경남경찰국의 지시를 받은 합천경찰서 사찰계는 1950년 7월 중순경 보도연맹 간부 등을 관내 지서를 통해 합천경찰서로 소집하였으며, 그들을 2~3일간 유치장에 구금하였다가, 7월 21일경 산청군 생비량면 화현리 소재 방아재로 이송한 후 집단 살해하였다. 또한 후퇴 직전의 경찰들은 7월 28일경부터 31일 사이에 보도연맹원등을 다시 예비 검속하였다가 합천면 계림리 야산, 용주면 용주지서 뒷산, 봉산면 행정리․상현리․권빈리 등으로 끌고 가 집단 살해하였다.

3. 합천 보도연맹사건의 희생자 또는 희생 추정자로 47명의 신원을 확인하였다. 희생자들은 여성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으로 연령은 20대가 10명, 30대가 28명, 40대가 9명이었으며, 직업은 농민 34명, 공무원 8명, 상인 1명, 기타 4명이었다.

4. 신청사건에서 ‘희생 확인’된 사람은 이이영(李以英․다-1072)등 12명, ‘희생 추정’된 사람은 신문재(辛文在․다-3754) 등 5명이며, 미신청사건에서 ‘희생 확인’된 사람은 이쾌주(李快株) 등 12명, ‘희생 추정’된 사람은 옥팔환 등 18명이다.

5. 사건의 직접가해자는 합천경찰서 및 관할지서 경찰들과 미 제24사단에 편입되어 권빈리 전투에 참전하였던 한국군 제17연대 소속 군인들이었다.

6. 이 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인민군에게 동조하여 후방을 교란할 것이라는 예단 하에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인’을 예비검속하고 살해할 것을 지시한 경남경찰국과 합천경찰서에 있지만 그 최종적인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가에 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