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신안ㆍ광주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10-06-11
조회수
168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4권-5-신안 광주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pdf [2064165 byte]
 

1. 박의담 외 33명 이상의 민간인이 1948년 6월부터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비금면 등 신안군 일대와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에서 수복작전을 수행하던 목포경찰서 관내 경찰과 각 지역 경찰, 광주지역 헌병대에게 살해되었다.

2. 조사결과 밝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8년 6월 서북청년단은 좌익 혐의자 검거활동을 하면서 신안군 임자면 민가에 들어가 주민을 구타하자 이에 항의하던 가족을 폭행하여 사망하게 하였다. 1950년 10월 이후 목포경찰서 및 관내 각 지서 경찰은 신안지역이 경찰에게 수복될 때 마을에 들어와 인민군 점령기 좌익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지서로 연행하여 구금하였다가 해상 또는 마을 앞 등에서 살해하여 수장하였다.

한편 광주지역에서는 인민군 점령기 부역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수복 후 경찰에게 연행되어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3.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하여 희생사실이 확인 또는 추정되는 사람은 34명이다. 34명 중 희생사실이 확인된 희생자는 30명이며 이중 진실규명을 신청한 희생자는 24명, 진실규명을 신청하지는 않았으나 조사과정에서 인지된 희생자는 6명, 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는 4명이다.

4. 이 사건 희생자 34명 중 남성은 32명이었고 이중 21세 이상 40세 이하인 청ㆍ장년은 21명이었는데, 이것은 희생자 대부분이 인민군 점령기의 좌익활동혐의로 연행되어 살해된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신안지역 사건의 가해자는 전라남도 목포경찰서 관내 각 지서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과 군경유가족이었다. 가해경찰의 지휘계통은 전라남도 목포경찰서장 ⇒ 각 지서장이었으며, 그리고 서북청년단 및 군경유가족이 민간인 희생사건과 관련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광주지역 사건의 가해자 또한 사건 지역 지서 경찰, 보조경찰, 그리고 지역 헌병대였다.

6. 이 사건의 가해자인 경찰은 신안 및 광주지역 수복과정에서 해당 희생자들을 인민군 점령기 좌익활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살해하였다. 또 광주에서는 헌병대가 인민군의 점령이 임박한 시점에 회사경영에 방해가 된다는 관리인의 요구를 받고 그 직원을 살해하는데 관여하였다. 사건발생 당시가 수복 후 혼란한 시기였다고 하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경찰이 비무장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살해한 것은 불법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