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경남 합천 등 민간인 희생 사건

작성자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작성일
2010-12-27
조회수
87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7권-2-경남 합천 등 민간인 희생 사건.pdf [1626072 byte]
 

1. 김정호 외 25명의 합천․창녕․밀양․울산․부산․마산․진주지역 주민들이 한국전쟁 전후 좌익활동 혐의가 있다는 이유, 인민군 측에 협력할 것이라는 이유, 인민군 측에 협력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작전지역 또는 관할지역의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합천읍 가리골, 밀양 산외면 다원마을 뒷산, 부산 기장면 기룡리 하근마을 야산, 마산 두척동 노산 등에서 집단희생당한 사실이 확인 또는 추정되었다.

2. 합천에서는 삼가면 하판리 상판마을 임민이가 1949년 10월 3일 합천경찰서 소속 경찰에 의해 합천면 가리골에서 총살되었으며, 가야면 매안리 신삼석, 이건택, 하갑출 외 1명의 주민이 1951년 1월 초순 가야지서 경찰에게 잡혀 야로면 만대산 골짜기에서 총살되었다. 용주면 우곡리 계성마을 김정호는 1950년 10월 3일 소롱산에 있던 빨치산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합천경찰서 소속 경찰에게 끌려가 대병면 소재 ‘옥가장터’에서 총살되었다. 율곡국민학교 교사였던 심기환 등은 1950년 9월 25일 부역혐의로 국군에게 끌려가 율곡국민학교 부근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창녕에서는 도천면 도천리 신용규가 1947년 7월 10일경 창녕경찰서로 연행되어 심한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1주일도 안 되어 1947년 7월 22일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4. 밀양에서는 부북면 권영갑, 박삼출 등이 부북국민학교에 갇혀 있다가 1949년 5월 19일 산외면 다죽리 다원마을 뒷산에서 경찰에게 총살되었으며, 산외면 희곡리 백재갑은 1948년 9월 2일 산외지서 경찰에 의해 마을 인근에서 사살되었다. 초동면 성포리 안기환 외 5명의 주민은 1949년 3월경 상남면 동산리에서 밀양경찰서 사찰계에 의해 총살되었다.

5. 울산에서는 방어진읍 방어리 황학림 등이 의용소방대에 구금되었다가 1948년 8월 10일 방어진 앞바다에서 총격 후 바다에 수장되었다. 울산읍 우정동 손옥구는 국민보도연맹원으로 희생된 손학준의 동생으로 1950년 8월 밤늦게 친구 집에 다녀오던 중 경찰에게 끌려가 인근 야산에서 총살되었다. 울산읍 일산리 장두길은 1949년 3월 2일 울산제일중학교 근처 사무실에서 여러 명과 함께 총살되었다.

6. 부산에서는 정관면 달산리 방천득이 1949년 8월 18일 기장면 기룡리 하근마을 산에서 성명불상 1명과 함께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으며, 영도에 거주하던 홍춘사는 1948년 10월 부산 영도 자택에서 경찰에 연행된 후 불상의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7. 마산에서는 두척동 최병용, 최병권, 김두석이 마산경찰서 경찰에게 연행되어 1949년 8월31일 마을 앞산등에서 총살되었다. 진동면 마산삼진중학교 교사였던 도은태는 1949년 10월 7일 진북지서에 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의 구타와 고문에 의하여 살해당했다. 구산면 구복리 장명술은 1950년 8월 18일 배를 바다에 침몰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쇠섬 근처 바다에서 총살되었다.

8. 진주에서는 부산에서 교사로 있었던 김한경이 진주에 왔다가 1949년 9월14일 경찰에 연행된 후 불상의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판문동 강재복은 1950년 3월경 진주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불상의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이반성면 대천리 구장 고영기, 고위수는 피난민들과의 갈등 후 1950년 7월 25일경 후퇴하던 국군에게 연행되어 불상의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금산면 장사리 구장 정종락은 1950년 11월 7일 금산지서 경찰에게 연행된 후 하동방면 불상의 장소에서 희생되었다.

9, 이외에 양산지역 나기덕과 우종하는 경찰에게 연행된 후 희생되었다고 하며, 울산지역 울산읍 일산동 장두용, 장두성은 사촌인 장두길의 행방을 찾으려는 경찰의 추격을 피하여 숨어 다니던 중 희생되었다고 하며, 부산지역 방기문은 경남도청에 출근한 후 경찰에 연행되어 불상의 장소에서 희생되었다고 하며, 마산지역 여향면 여양리 박경찬은 미군이 진주할 당시 연행되어 희생되었다고 하나, 희생사실에 대한 일관된 입증자료를 찾지 못해 진실규명불능으로 판단되었다.

10. 합천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김정호(金正浩, 다-2734), 임민이(다-5721), 신삼석(申三錫, 다-6343) 등 3명이며, 희생추정자는 심기환(沈杞煥, 다-9182) 1명이고, 미신청사건 희생자는 이건택, 하갑출 등 2명이다. 창녕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신용규(辛容奎) 1명이다. 밀양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권영갑(權寧甲, 다-3607) 등 3명이며, 미신청사건 희생자는 박삼출 1명이다. 울산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장두길(張斗吉, 다-4623) 등 3명이다. 부산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방천득(房天得, 다-4934) 등 2명이다. 마산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장명술(張命術, 다-5049) 등 5명이다. 진주지역의 신청사건 희생자는 김한경(金漢景, 다-1070) 등 4명이며 미신청사건 희생자는 고위수 1명이다.

11. 진실규명불능대상자는 장두용(張斗恿, 다-266(1)) 등 6명이다.

12. 희생자들은 전쟁 전 반정부 좌익활동 또는 식량 제공 등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주민들, 반정부활동으로 국민보도연맹 등에 가입했던 주민들, 인민군 점령 당시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이었다.

13. 이 사건의 가해주체는 경상남도지역을 담당했던 제3사단 제23연대 등 국군과 각 지역의 담당 경찰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가해책임은 각 경찰서과 경남경찰국, 국군에 있으며 공권력의 불법행사를 막지 못했던 정부에게까지 책임이 귀속된다.

14.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에 대한 가해행위는 위법한 것이었다. 국군과 경찰은 연행 직후 적법한 절차 없이 민간인들을 총살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인 생명권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