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별조사보고서

포항지역 미군폭격 사건

작성자
작성일
2010-12-27
조회수
26
결정유형
진실규명결정
사건유형
민간집단희생
첨부파일
8권-3-포항지역 미군폭격 사건.pdf [7484083 byte]
 

1. 진실규명

가. 1950년 8월 27일과 1950년 8월 29일, 경북 포항 흥해읍 용한리 해변, 흥해읍 칠포리에서 이 지역 주민들과 이 지역으로 온 피난민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희생되었다. 이 폭격은 미 제5공군 제18전폭전단 소속 제39폭격대대, 미 해병 함재기 VMF 214폭격대대가 실행한 것이다.

나. 진실이 규명된 2개 사건에서 이금이(李今伊, 다-6230-3) 등 총 16명이 희생자로 확인되었다. 두 사건은 포항 부근 전투에서 국군이 인민군의 공세에 밀려 급히 퇴각하면서 주민들을 소개․피난시키지 못하고 인민군 점령지에 남겨둔 상태에서 발생했다. 미군이 적극적으로 공중폭격작전을 전개했는데, 이 폭격은 교전지 인근의 민간인들에게도 커다란 피해를 발생시켰다. 포항시 흥해읍 인근의 치열했던 천마산 전투를 고려할 때, 이 두 건의 폭격은 미군이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공군력을 활용하여 전투의 인접지에서 아군의 불확실과 위험의 요인을 제거하거나, 인민군의 배후지를 차단하려는 작전을 전개하는 작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 포항 용한리 해변 미군폭격사건의 경우, 미군 정찰기 등이 전투의사가 없는 민간인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징표인 ‘흰 깃발을 흔드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을 인식했다. 당시 인민군이 흰 옷을 입고 위장한 경우가 있어 의심이 들었다 해도, 피난민 중에 여성ㆍ미성년자의 비중이 높았으므로 적어도 피난민이 다수인 것은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사전경고 없이 다수가 피난민인 집단을 무차별 폭격한 것은 구별의 원칙과 사전경고의 원칙에 위배된다. 즉 불리한 전황에서 전투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군사적 이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보다 국제법 위반이 중대하고 민간인의 희생이 과다하여 불법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라. 포항 칠포리 미군폭격사건의 경우, 민간인 마을을 초토화 시킨 것으로서 이로 인한 민간인의 인적․물적 피해가 대단히 컸다. 비록 피탈된 고지에 대한 공격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그 근접지에 대한 차단 폭격작전을 수행하더라도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주의 의무를 다하는 등 구별의 원칙을 지킬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미군은 인민군이 주둔하지도 않은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이 폭격은 당일 아군의 공격작전에 기여하는 군사적 이익보다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가 과도하여 불법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2. 진실규명불능

가. 1950년 8월 23일부터 1950년 9월 23일 사이에 경북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 청하면 이가리․월포리, 신광면 마북리, 송라면 광천리․방석리, 연일읍 유강리, 청하면 유계리, 신광면 만석리, 송도동 송도해변 등에서 이 일대의 주민과 이 지역으로 온 피난민들이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 또는 부상한 사실이 밝혀졌다.

나. 위의 사건으로 사망한 것이 밝혀진 사람은 김종득(金鍾得, 다-6230-5), 강수도(姜水道) 등 38명이며, 위원회에 신청하지는 않았으나 조사과정에서 이규연(李圭連) 등 13명이 사망한 사실도 밝혀졌다.

다. 이 사건에 대해, 국제법 위반 가능성을 고려하여 국제인도법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1907년 「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헤이그협약」 제25조(무방비 마을의 폭격 금지), 제26조(사전경고), 제46조(생명이나 재산의 존중의무), 헤이그 공전규칙안(Draft Rules of Air Warfare, 1923) 제24조(민간인․민간시설 폭격금지), 「제네바 제4협약」(제2편 주민의 일반적 보호, 제16조) 등을 검토하였다.

라. 이 미군폭격사건에서 당시 미국과 한국정부가 피난민 보호와 소개 조치, 폭격시 민간인 거주마을에 대한 충분한 숙지와 주의 의무, 적군과 민간인,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별하는 사전 조치와 교육 등을 소홀히 한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사건관련 기록, 곧 미군폭격기록, 작전지침, 교전지침 등을 충분히 입수 분석하지 못해 미군폭격의 불법성 여부를 규명하지 못하였다.